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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기지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분명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교는? 적어도 너희는 나랑 해저기지에 계속 남아야지. 그런 못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박무현은 몹쓸 생각을 금세 철회했다.

‘아니다. 너네도 다 나가버려.’

전시장에는 보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약에 무한교가 정말 해저기지를 포기하고 떠난 거라면 자신은 왜 여기서 하루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걸까.

결론은 간단했다. 무한교는 아직 해저기지에 남아 있는 거다. 그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보석을 전부 내팽개치고 구원자를 찾는 것조차 포기한 채 해저기지를 떠났을 리 없다. 박무현이 그동안 꾸준히 무한교 신도들을 설득하고 탈출을 권하기는 했으나 뼛속까지 글러 먹은 수뇌부들은 해저기지를 포기할 리 없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 놈들이라는 걸, 박무현은 잘 알고 있었다.

제1해저기지를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창밖의 바다가 점차 푸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무현은 창밖을 구경하는 대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잠이 부족했는지 정신이 몽롱해진다. 졸린 건 아닌데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시야가 어지러이 흔들린다. 그 너머로 그리웠던 모습들이 하나둘 지나갔다.


“제 마지막이니 제 마음에 드는 걸로 할 겁니다.”


저와 같이 있어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도 익사로는 죽지 않기로 했다며 미련 없이 떠나버린 얄미운 낯짝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거 기억하세요.”


평소엔 생글거리던 녀석이 반드시 본인의 자리를 생각하라며 표정을 굳히고 진지하게 말하던 모습도.


“다시 돌아올 거니까 말없이 없어지면 안 돼요! 데리러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소리 내지 말고 기다리라며 신신당부한 뒤 대한도로 훌쩍 떠나버리던 뒷모습도. 전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박무현은 시큰거리는 코끝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두 손으로 라피스라줄리를 꼭 쥔 채 언젠가 김가영이 해줬던 말을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다. 해저기지에서 나갈 수 없다면, 해저기지에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면 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내보내고 나면 그땐 제 차례가 와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너무 우울하게만 생각하지 말자.

“후…….”

긴 한숨을 내쉬며 박무현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제1해저기지에 도착했다.

박무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혹여나 무한교가 총구를 겨눈 채 경계하고 있지는 않을까 긴장됐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 너머. 텅 빈 복도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무현은 손에 쥐고 있던 목걸이를 가방에 넣어두고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가 기억하는 1해저기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총을 들고 조를 이뤄 복도를 지키고 감시하던 무한교 신도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전 해저기지들과 달리 마냥 적막하지도 않았다.

멀찍이서 은은한 말소리와 인기척이 들렸다. 해저기지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다. 박무현은 본능적인 반가움에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소리와 발소리가 교차하는 곳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간간이 소리가 나는 곳은 다름 아닌 무한교가 제단을 만들어놓은 정원이었다. 거기에 사람이 모여 있었다.

‘거 봐. 무한교 놈들이 그냥 떠났을 리 없지.’

정원 안에는 많지 않은 수의 사람이 복작대고 있었다. 이전에 비하면 적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절대 적은 수의 인원은 아니었다. 제단 앞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박무현은 멀찍이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현실 같지 않은 광경을 멍하니 구경했다.

저렇게까지 신실한 사이비 신도를 어떻게 해야 해저기지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저들을 설득하는 게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막연한 계획을 상상해보는 사이. 이쪽을 의식하고 쳐다보는 사람들과 시선이 부딪혔다.

박무현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뒷목이 뻐근하게 굳었다. 지금 그의 상황은, 무한교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으니 스스로 그들에게 찾아온 셈이나 다름없었으니.

정체를 들킨 순간 박무현은 즉시 저 제단에 바쳐져 목숨을 잃을 것이다. 제 발로 나를 어서 죽여주십시오 하고 찾아온 꼴이었다.

해저기지에 저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너무 반가워서 그만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기껏 무한교를 피해 숨어다닌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원을 등지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다급했다. 부디 제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기를. 그렇게 바라며 막 정원에서 벗어나려던 순간.

“선생님.”

누군가 박무현 옆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

흠칫 놀란 박무현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귓속말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이에 사람이 다가와 있었는데도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보다도 박무현을 깜짝 놀라게 한 건…….

“모시러 왔습니다.”

오랜만에 듣는데도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선명하고 익숙한 음성.

“어깨에 힘을 풀고 자연스럽게 걸으십시오.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고개를 들자 무한교 같은 행색을 한 남자가 박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라클라바를 뒤집어쓰고 있었음에도 박무현은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해량 씨?”

얘가 왜 여기 있어.


* * *


박무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신해량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러자 이쪽을 의아하게 쳐다보던 시선들이 금방 흩어졌다.

신해량은 완벽하게 무한교 신도처럼 보이는 차림을 하고 박무현을 중앙 엘리베이터까지 인도했다. 다행인지 뭔지 중앙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고 문이 열린 채 1해저기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무렵.

“선생님께서 정원 쪽으로 움직이시길래 잠시 멈춰두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박무현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 말인즉슨, 신해량은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박무현을 보았고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지시킨 뒤 그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는 뜻이었다.

덤덤한 신해량의 설명을 들으며 박무현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제 뒤를 밟았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뿐더러 나름 인기척에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해량이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신해량은 박무현을 엘리베이터 태우고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구원자를 찾으며 달려오는 광신도는 두꺼운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제1해저기지를 떠나 지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총을 내려놓은 신해량이 얼굴을 덮고 있던 발라클라바를 벗어던졌다. 보기 좋은 훤칠한 얼굴이 드러났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리운 얼굴에 박무현은 어쩔 수 없는 반가움을 느꼈다. 이제는 흐릿해져 잘 떠오르지도 않던 얼굴이 눈앞에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다. 까먹을 뻔했던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형용하기 힘든 감정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박무현은 그냥, 신해량이 너무 반가웠다. 무사해 보이니 정말 다행이다. 다친 곳도 없어 보이니 더더욱 다행이었다.

근데 도대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해량 씨, 설명이 필요합니다. 왜 여기 계시는 거죠?”

“선생님을 안전히 모셔오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무한교 흉내는 끝난 거 아니었다. 영문 모를 대답에 박무현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누가 그런 지시를 한 겁니까?”

“백애영의 지시였습니다.”

박무현이 눈을 크게 뜨며 신해량을 쳐다보았다. 긴장 풀린 몸이 축 늘어지며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었다. 그대로 박무현은 주르륵 자리에 주저앉았다.

구조대를 보내 달라고 한 거였는데 신해량을 보낼 줄이야. 박무현이 멍하니 백애영과 있었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동안 신해량은 땀 맺힌 이마와 목덜미를 손으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애영 씨가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현 씨를 반드시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부연 설명이 뒤따를 줄 알았건만 신해량은 그대로 입을 닫아버렸다. 땀으로 젖었다기엔 머리를 감은 수준으로 신해량의 머리칼은 흠뻑 젖어 가닥가닥 덩어리져 붙어있었다. 신해량은 아직 물기가 남은 듯한 머리칼을 한 손으로 휙 쓸어넘기며 묵묵히 엘리베이터의 현 위치를 파악했다.

“곧 엘리베이터가 대한도에 도착할 겁니다.”

참다못한 박무현이 물었다.

“애영 씨가 뭐라고 했는지 아주 길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엘리베이터의 투명한 창밖을 바라보던 신해량이 고개를 돌렸다. 박무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박무현은 그 빤한 시선에 지금 그딴 게 궁금하냐며 타박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신해량이 그런 거로 탓할 놈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데도.

가만히 박무현을 응시하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박무현도 덩달아 긴장했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거 같진 않았다.

신해량은 약간 망설이는 듯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애영이 말로는 중앙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무현 씨가 계셨다고 했구요.”

“…….”

예기치 못한 답변에 박무현의 입이 합 다물렸다. 신해량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내부를 쓱 훑어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도, 엘리베이터도 멀쩡하군요.”

그것이 결코 기분 좋아서 짓는 미소가 아니라는 것쯤은 박무현도 알았다.

원체 표정을 읽기 힘든 신해량이기는 했으나 박무현이 봐왔던 얼굴 중 가장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건 박무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애영과 함께 탈출을 목전에 앞둔 순간이 떠오른다. 박무현은 대한도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코앞에 두고 엘리베이터와 함께 심해로 추락했다.

이 중앙 엘리베이터는 존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박무현은 신해량과 함께 추락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한번 지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신해량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상황일 것이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박무현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사이, 신해량은 덤덤하게 박무현의 부탁대로 길고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백애영은 당장 선생님을 구하러 가려 했습니다. 저는 대한도를 정리하는 걸 우선으로 여겼고, 지상 전력에는 백애영이 필수였습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다치셨을 경우를 생각해봐도 제가 해저기지로 내려가는 것이 맞았습니다. 애영이 혼자 무현 씨를 부축해서 무한교 몰래 해저기지를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신해량은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성심성의껏 박무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가 왜 해저기지에 다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백애영은 무현 씨가 올라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박무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신해량의 태도가 지나치게 침착하기 때문일까.

지금 신해량이 보여야 할 모습은 박무현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할 게 아니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따져 물어야 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분명 죽어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고 추락했다던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하는 이 상황에서, 신해량은 터무니없을 만큼 차분했다. 전혀 놀라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손가락이 무사하시군요.”

오히려 박무현의 왼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박무현은 아연한 얼굴로 왼손의 약지와 소지를 반사적으로 감싸 쥐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제게 부상 사실을 숨기시면 안 됩니다.”

“어, 없습니다. 멀쩡해요.”

신해량은 뜻 모를 미소를 짓더니 금세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둬냈다.

“그런데요, 해량 씨.”

박무현은 찜찜함을 잠시 뒤로 미뤄둔 채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가늠하며 말했다.

“초 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그랬듯 지상에 닿지 못하고 멈출 것이다.

“저는 아마도 여기서 나가지 못할 겁니다.”

왜냐면 해저기지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었다.

“…….”

신해량은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박무현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빤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박무현은 감히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괜한 소리를 한 거 같다. 그래도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박무현은 해저기지에서 나가고 싶어 이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기는 하지만, 정말 나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그럼 제4해저기지에서 왜 중앙동 엘리베이터를 불렀더라. 그때는 정말 해저기지를 나가고 싶었나.

하지만 왜 자신은 지상으로 즉시 올라가지 않고 모든 해저기지를 들러 사람의 흔적을 찾아 헤맸을까. 나가고자 하는 생각이 정말 있긴 했던가. 모르겠다.

박무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습관처럼 오른손을 꽉 말아쥐었다.

“나가게 해드리겠습니다.”

신해량은 퍽 대수롭지 않은 일인 거처럼 말했다. 그 덕에 박무현까지 맥이 빠져 푸흐흐 웃음이 새 나왔다.

“아뇨. 그건 제가 할 일입니다. 기껏 내보냈더니 왜 다시 돌아오고 난리야…….”

박무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언가 꼭 쥐기라도 한 것처럼 움키고 있던 오른손을 머쓱하게 펼쳤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해저기지를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기껏 내보낸 사람이 돌아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박무현은 텅 비어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

잠시 말이 없던 신해량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함께 나갈 겁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묵직하게 박무현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듣긴 한 거냐. 박무현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낯짝에 박무현은 잔뜩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풀 수밖에 없었다.

신해량은 지금껏 박무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씁쓸하면서도 안도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현 씨.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예?”

“짐승도 은혜를 압니다.”

소리 없이 미소 짓는 얼굴을 보자 박무현은 불현듯 어둑한 딥 블루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 * *


끼기기긱-

매끄럽게 지상을 향해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의뭉스러운 신해량에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 것이냐 따져 물을 새도 없었다.

박무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닿지 못한 채 멈췄다는 것은 곧 추락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와도 같았기에.

“엘리베이터가 멈췄군요.”

정작 신해량은 태평해 보이기만 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난 것처럼 작동이 멈췄고 조명까지 전부 꺼져버렸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박무현은 초조함에 입이 바싹 말랐다.

지금 우리 위험한 상황이라고. 박무현은 속으로만 구시렁대며 비상구출문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나 전과 달리 불이 완전히 꺼져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확한 출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바다를 보여주던 창밖으로 캄캄한 어둠이 펼쳐졌다. 인공섬 내부의 승강로에 들어선 듯했다. 박무현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움켜쥐었다가 배낭 안에 필요한 광원이 있음을 깨달았다.

“해량 씨.”

가방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라피스라줄리를 꺼내는 박무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거, 돌려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주인에게 돌려주는 날이 오는구나.

“혹시 목걸이 때문에 엘리베이터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거라면 버리셔야 할 것 같…….”

그 순간,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석이 부서졌다. 산산조각나 깨진 보석이 박무현의 손바닥 위에 어지러이 놓였다.

“어? 이게 왜…….”

당황한 박무현은 목걸이를 쥐고 있던 오른손 아래를 왼손으로 받쳤다. 졸지에 두 손으로 공손히 깨진 목걸이를 소중히 받치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보석이 원래 이렇게 깨지나? 박무현은 손에 거의 힘도 주지 않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신해량에게 잘 보이도록 손바닥에 목걸이를 올려놓고 내밀었을 뿐이다.

박무현이 얼떨떨한 눈빛으로 신해량과 조각난 라피스라줄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너도 봤지? 눈앞에서 저 혼자 깨진 거 너도 봤지? 내가 한 거 아니다? 그 마음의 소리가 닿기라도 했는지 신해량은 덤덤한 얼굴로 박무현의 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한눈에 봐도 비교가 될 만큼 큼직한 손이 박무현의 손 아래에 자리했다.

박무현은 신해량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손바닥을 기울였다. 그의 손아귀에 흩어져 있던 원석 조각들이 신해량의 손바닥으로 파스스 쏟아져 내렸다.

“목걸이가 선생님에게 있었습니까…….”

박무현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바닥으로 떨어진 목걸이 줄도 챙겨 신해량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신해량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목걸이를 되찾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하기엔 네게 너무 중요한 물건 아니었냐. 박무현이 착잡한 기분으로 신해량을 쳐다봤다.

기뻐하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후련한 건지. 도통 속을 모르겠는 표정으로 신해량은 미소 짓고 있었다.

“해량 씨에게 소중한 물건이잖습니까. 당연히 찾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아 헤맬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았습니다.”

신해량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게 무사히 돌아온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산산이 깨졌음에도 여전히 라피스라줄리는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해량이 정말 안심하고 기뻐하는 걸까. 적어도 싫어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낯짝을 보니 그동안의 노고가 헛된 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박무현은 울렁거리는 마음에 괜히 헛기침만 해댔다.

“이걸 무사하다고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저도 해량 씨에게 목걸이를 돌려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박무현은 눈앞에서 박살 난 라피스라줄리가 유감스럽기만 했다. 정작 신해량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지만.

어느새 입가에 은근하게 그려져 있던 미소는 지워졌으나 분명 기뻐하는 거 같긴 하다. 저 반응을 보니 박무현은 어서 백애영에게도 금괴가 잔뜩 들어있는 파우치를 안겨주고 싶었다.

“무현 씨.”

“예?”

“이리로 오십시오.”

신해량은 말없이 내려다보던 부서진 목걸이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박무현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조각난 원석의 잔해가 묻은 것인지 손짓하는 신해량의 손바닥에 푸릇한 빛이 희끗하게 남아 있었다.

“잘 보이지 않겠지만 여기 바로 위에 비상구출문이 있습니다.”

박무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니 비상구출문 비슷한 게 보이는 거 같기도 했다.

“올려드릴 테니 문을 열고 나가십시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신해량은 단번에 박무현을 집어 들었다. 얼결에 신해량의 어깨에 무등을 타게 된 박무현이 깜짝 놀라 둥그런 머리통을 덥석 붙들었다.

아무리 힘이 좋다지만 성인 남성을 이렇게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게 말이 되나.

“안 보이십니까?”

“자, 잠시만요. 사람을 그렇게 갑자기 들어버리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박무현은 간신히 한숨을 돌린 뒤 신해량의 머리통을 놓았다. 그리고 구부정하게 움츠리고 있던 몸을 펴며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천장을 더듬거렸다. 신해량이 말한 바로 그 위치에 비상구출문이 있었다.

박무현은 육중한 엘리베이터 천장 문을 밀어냈다. 생각보다 무거운 비상구출문을 어설프게 열어젖히고는 다급히 외쳤다.

“해량 씨! 해량 씨가 먼저 나가세요. 이거 곧 추락할 겁니다.”

“마저 올라가십시오. 애영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량 씨 먼저…….”

“이곳에서 실랑이를 벌일수록 추락 시간에 가까워집니다.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오늘따라 해량 씨는 말이 안 통하네요.”

원래 이 정도로 말을 안 듣던 놈이었던가? 벽창호 같지는 않았던 거 같았는데. 박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먼지가 풀풀 날리는 탈출구 너머로 기어 올라갔다.

“무현 씨!”

그러자 지상 입구에서 백애영이 기다렸다는 듯 박무현을 맞이했다.

“얼른 올라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완벽하게 준비된 구명줄을 내던지며.


* * *


박무현이 마침내 대한도 땅을 밟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이 실감 나지 않았다.

감격에 젖어 고개를 들자 섬을 감싸고 있는 듯한 거대한 몸통이 보였다. 푸른 비늘이 빼곡하게 있는 몸뚱이는 바로 박무현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 가까워지더니 이내 시야가 암전되었다.

‘이게, 다 무슨…….’

박무현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뱀에게 옆구리가 물려 해저기지를 횡단하듯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던 하루들을 보았다.

엔지니어 다팀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었는데, 실상은 자신을 고기 방패로 써먹은 것이다. 괘씸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물에 잠겨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던 제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더욱 이해가 안 되고 놀라운 건 박무현이 사망한 이후의 해저기지 상황을 봤다는 것이다. 그건 도대체 누구의 기억인지 알 수 없어졌다.

박무현은 그렇게 거대한 뱀에게 물린 채 해저기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의 기억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있었다.

“무현 씨.”

“허억.”

어깨를 지그시 붙드는 손길에 박무현이 화들짝 놀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대한도로 금방 뒤따라 올라온 신해량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예…… 햇빛을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박무현이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었다. 조금 전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얼떨떨하기만 했다. 영겁처럼 길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머리를 지나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뱀에게서 내동댕이쳐 다시 대한도로 떨어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을 텐데도 심장이 바삐 요동쳤다. 박무현은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지그시 내리누르며 호흡했다.

“무현 씨. 다친 곳은요?”

뒤이어 머리가 다 헝클어진 백애영이 달려와 박무현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백애영은 울 거 같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맞다. 애영 씨한테 드릴 거 있어요.”

박무현은 기다렸다는 듯 챙겨두었던 파우치를 얼른 꺼냈다. 드디어 백애영의 자그마한 금고도 돌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 보세요. 제가 애영 씨 금들을 전부 가지고 나왔습니다. 다행이죠?”

펄쩍 뛰며 기뻐할 줄 알았던 백애영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박무현을 짧게 포옹했다. 새삼 정말 작고 가벼운 몸이었다.

“애영 씨……?”

좀 더 기뻐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백애영은 오히려 화가 난 거 같기도 한 표정으로 박무현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마저 섬을 살펴본다며 돌아갔다. 박무현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직도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괴상한 기억의 잔재들에 정신이 혼미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해가던 박무현의 눈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신해량이 들어왔다. 급박한 상황에 뒷전으로 밀렸던 의문이 불쑥 떠올랐다.

“해량 씨,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질문하십시오.”

해변가를 주시하던 신해량이 박무현을 쳐다보았다.

“딥 블루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

신해량은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기이한 상황을 목격했음에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미심쩍은 그의 태도는 마치 지난 일을 모두 기억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하지만 말이 되질 않는다. 여태까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신해량은 딥 블루에 간 적이 없어야 한다. 그곳에 있었던 일들을, 거기서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해야 한다. 그건 오로지 박무현만 알고 있는 기억이었으므로 신해량에게는 없었던 일이어야 마땅하다.

질문의 저의를 파악한 것인지 신해량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는 무현 씨를 인질로 잡아 딥 블루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말에 박무현은 숨이 턱 막혔다.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대한도 땅을 밟았을 때 모든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

“저뿐만 아니라 모두의 공통된 증언이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박무현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신해량을 쳐다봤다. 정작 신해량은 덤덤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놀랍지도 않나? 이상하지도 않냐고. 박무현은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형용하기 힘든 안도감을 느꼈다.

이곳에서의 일을 온전히 저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서. 안심하다 못해 순간적으로 반가움마저 느꼈다는 사실이 못내 끔찍했다.

“……기억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겁니다.”

내심 자신의 고생과 고통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고통 따위 나누어서 무엇할까.

누구 하나 끔찍하지 않았던 죽음이 없었다. 저 혼자만 아는 기억과 미련을 붙들고 매번 새롭게 그들을 마주할 때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다른 사람들이 반복되는 루프에서의 기억을 모조리 떠올려주길 바란 건 또 아니었는데.

“무현 씨 홀로 감당하려 하셨습니까.”

“반복하는 하루를 기억하던 건 저뿐이었으니까요.”

박무현의 시선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추락했을 중앙 엘리베이터 쪽을 향했다. 승강로 안쪽으로 펼쳐지는 캄캄한 어둠을 응시하며 박무현은 주작동 엘리베이터를 추락시켰을 이지현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기억 따위, 이지현에게 없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어차피 다들 기억 못 하셨고…… 익숙해졌습니다.”

아니다. 실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죽음은 매번 고통스럽고 아프고 무서웠다.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느끼는 무력감에 몇 번이고 주저앉고 전부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전부 티가 납니다.”

“하하…….”

박무현이 머쓱하게 얼굴을 문질렀다. 사람이 기껏 좋은 뜻으로 말하는데 거짓말한다고 지적이나 해대고. 눈을 가늘게 뜨며 신해량을 쳐다보자 그 역시 무심한 듯한 시선으로 박무현을 마주한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신해량의 젖은 머리칼 끝이 살짝 흔들렸다. 박무현은 무의미한 눈싸움을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눈부시게 작열하는 태양빛을 따라 널찍하게 뻗은 해안선을 바라았다.

그곳엔 대한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듯 적지 않은 수의 시쳇더미가 놓여있었다. 무한교였을 사람일 수도, 무한교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저들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제가 벌써 탈출해도 되는 걸까요.”

“? 예.”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박무현의 말에 신해량은 무슨 소릴 하는 거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표정을 보니 박무현은 절로 웃음이 터졌다.

신해량에게서 보기 힘든 어리둥절한 표정이라. 그 때문에 괜한 변명을 덧붙이게 됐다.

“아직 1해저기지에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걱정하십니까.”

신해량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였다. 박무현은 그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다가 고개를 뒤로 젖혀 오늘따라 높아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해저기지에서 내보냈다. 끝내 구하지 못한 생명도 있었지만.

“저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으나 박무현은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제가 해저기지를 나갈 수 없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해저기지에 갇혀 무한히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거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필 박무현이, 하필 해저기지에서 하루를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던 이유.

“지금 무현 씨는 대한도에 계십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박무현의 상념을 신해량이 단호히 끊어냈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박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해저기지를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해저기지를 나갈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 제 옆에는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게요.”

단호하고도 확실한 그의 설명에 박무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까.

“제가 정말 나왔네요.”

분명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 그를 깊은 심해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투명한 벽이 그가 지상으로 나갈 수 없게끔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무현은 지금 대한도 땅을 밟고 서 있었다. 신해량의 말대로 완전하게 해저기지에서 벗어났다.

그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전부 꿈은 아닐까. 정신을 차리면 다시 백호동 숙소에서 깨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뒤따랐다.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충분히 기뻐하셔도 됩니다.”

박무현이 눈썹을 휘며 신해량을 쳐다봤다. 신해량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해량 씨는 제가 해저기지에서 나와 기쁘십니까?”

“예.”

장난으로 던진 농담에 진중한 답변이 돌아왔다. 괜스레 머쓱해진 기분에 박무현은 휙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그…… 대한도는 안전한가요?”

박무현의 시선을 따라 신해량이 해안가를 응시했다.

“병원과 본부 또한 무한교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습니다. 정리는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한도는 이미 완벽히 정리된 상태였다. 서지혁이랑 백애영이 깔끔하게 소탕했다고 한다. 안나를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아직도 이쪽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말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애영 씨는 어딜 가신 겁니까? 아직 무한교가 남아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글쎄요.”

신해량이 대답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박무현이 신해량의 시선을 따라갔다. 조금 전까지 백애영이 있던 자리였다.

“다른 분들은 전부 무사하신 거죠?”

“강 부팀장과 지현이는 탈출정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상현이가 다쳐서 병원으로 옮겼고, 재희는 대한도로 올라오고 나서 계속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김재희가 무사히 올라오긴 했나 보다. 박무현은 크게 안도했다.

다들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한순간 긴장이 풀렸다.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무릎이 꺾이며 풀썩 쓰러지려는 박무현을 신해량이 재빠르게 잡아챘다.

박무현은 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멀쩡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드러눕고 싶었다. 박무현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러자 신해량은 박무현 옆에 번견처럼 우뚝 서서는 엉뚱한 걸 물었다.

“애영이가 많이 반가우셨나 봅니다.”

“예?”

“애영이 얼굴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더군요.”

“아. 애영 씨한테 꼭 드리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아까 전달했던 금괴 말씀입니까.”

“예. 제 손가락이 멀쩡한 거 보고 애영 씨가 너무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애영 씨가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말이에요.”

사실 당시의 기억은 이미 흐릿해져 있었다. 손가락이 잘렸을 때 정말 아팠던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뎌졌다. 너무 많은 하루가 지나간 탓에.

하지만 멀쩡한 자신의 손가락을 부여잡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 백애영의 머리통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입술 안쪽 살을 깨물고 시큰해지려는 눈시울을 애써 가라앉혔던 거 같기도 하다.

아까, 백애영이 뭐라 했더라.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도 되는 거예요?”


백애영은 화가 난 거 같기도 하고, 울 듯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박무현을 쳐다봤다. 정말 괜찮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박무현은 더욱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손가락이 멀쩡하니까 다행인 일이죠.”

“무현 씨가 죽었던 거잖아요.”

“…….”


그건 애영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대신 박무현은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혁이도 선생님을 걱정했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뵙고 싶어 하는군요.”

“예? 지혁 씨요? 어디 있는데요?”

“멀리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하하, 하…… 박무현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서지혁에게 지금 전시장에서의 기억이 돌아왔다는 건가. 사람을 약쟁이 취급하면서 한껏 서운하게 했던 것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날 잡고 서운하다고 토로하면 절절매는 서지혁을 볼 수 있는 걸까. 박무현이 연거푸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와 제 팀원들이 선생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신해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무현은 깜짝 놀란 눈으로 다급히 반박했다.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기는 한데, 어쩐지 신해량이 기가 죽은 것처럼 시무룩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케이블카에 절 혼자 두고 가버리신 건, 조금 서운했습니다. 저 그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

신해량의 눈이 커졌다. 그는 정말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내리떴다. 꽤 당황한 거 같은 모습에 도리어 박무현이 머쓱해져서 덧붙였다.

“농담입니다.”

“그때는 그게,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왜 자신의 죽음을 남에게 해명하고 있는 건지.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익사로 죽는 건 고통스러우니까요.”

해수면을 코앞에 두고 물에 잠겨 죽던 순간과 그 후로도 몇 차례 검은 물에 잠겨 숨이 멎어가던 순간의 고통. 모든 죽음이 괴롭고 무서웠지만, 익사는 확실히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머리에 총을 맞는 게 나을 정도로.

그러나 박무현은 죽음은 여럿 반복한 지금까지도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쏠 용기 따위 없었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죽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으니까.

“무현 씨를 제3해저기지에서 탈출시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탈출정이 고장 났던 겁니까.”

신해량이 말하는 탈출정이 언제의 탈출정이었는지, 박무현은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박무현이 처음으로 익사한 순간이었으니.

“탈출정의 고장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수면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다이빙으로 탈출하던 중에 저만 특정 수심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잖습니까.”

“예. 기억합니다.”

“그게 탈출정을 타고 있을 때도 적용된 거 같습니다. 탈출정은 해수면에 도착했다고 해치를 열어버렸고, 그 뒤에는 뭐 예상 가능한 대로입니다.”

박무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다들 해저기지에서 나와놓고 왜 아무도 대한도를 탈출하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다 돌아왔다면 이 지긋지긋한 곳을 한시라도 뜨고 싶었을 텐데.”

구조 요청을 해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그 또한 대한도를 나간 뒤에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박무현이 대한도로 올라오니 이곳을 떠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선은 무한교를 무력화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야 해저기지에서 올라올 다른 인원들도 무사할 테니까요.”

신해량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대한도를 둘러봤다. 그리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무현 씨를 구하고 싶어했습니다.”

“…….”

“지혁이나 애영이나 서로 해저기지로 내려가겠다며 난리를 피우더군요.”

“아…….”

박무현은 목이 메어 잘 나오지도 않는 소리를 쥐어 짜내어 말했다. 목소리가 한껏 잠겨 흔들리고 있었다.

“그, 고맙습니다. 사실,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누구라도 좋으니까 구하러 와주면 좋겠다고…….”

박무현은 어금니를 한번 세게 물었다가 놓으며 욱신거리던 눈시울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많이 내보낼수록, 좋은 일을 많이 할수록, 자신이 탈출할 기회나 확률도 높아지는 거 아닐까. 이건 일종의 시험이 아닐까. 별생각을 다 해보았다.

사람들의 탈출을 도우면서도 박무현도 틈틈이 해저기지에서 도망치려 했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꾸준히 탈출을 시도했고 실패했으며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그것만큼은 실패하지 않았으니까.

“몇 번을 반복해도 저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게 내 사명인가보다. 해저기지에 단 한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을 탈출시키면, 그때 제 차례가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박무현의 말을 가만 듣던 신해량이 물었다.

“역시 해저기지에서 계속 반복 중이셨군요.”

박무현은 이쪽에 그림자가 지도록 서 있는 신해량을 올려다보며 턱을 끄덕였다.

“……예.”

“제게는 무현 씨와 재희를 놓치고 리코와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박무현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대한도와 해저기지에서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어쩐지. 신해량의 머리칼이 왜 젖어있나 했더니 그는 실제로 바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거다. 그리고 이 위에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박무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박무현을 잊지 않았다.

해저기지에서 수없이 많은 하루를 반복하는 동안 대한도에서는 고작 반나절에 불과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박무현은 억울하지 않았다.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 반나절 동안 정신없이 바빴을 이들의 노력에 그동안 고생했던 모든 시간이 보상받은 거처럼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박무현은 두 손바닥으로 시큰대는 눈가를 지그시 누르며 웃었다.

“해저기지가 붕괴했습니다.”

그런 박무현의 상태를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신해량이 묻지도 않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애영이가 중앙 엘리베이터를 확인하고는 달려와서 말하더군요. 분명 추락하는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본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을 한다고.”

“…….”

“이후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한도로 올라왔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었습니다. 다들 무현 씨를 기억하더군요.”

박무현은 코끝과 눈가에서 시큰대는 느낌이 사라진 후에야 두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위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신해량을 올려다보자 그가 내리뜬 눈으로 박무현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무현 씨가 보낸 사람들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차분히 말하고 있는 신해량의 눈동자가 아주 희미하게 떨리는 거 같았다.

박무현은 실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저 밑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신해량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박무현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던 치과의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박무현이 그에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해량의 손을 맞잡았다. 단단한 손아귀가 박무현을 붙들고 일으켰다. 힘이 풀린 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자 신해량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들어 바로 세웠다.

“집으로 가시죠.”

더는 흔들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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