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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下


믿을만한 정보라고 말하는 당사자의 얼굴에도 언뜻 혼란스러움이 읽혔다. 백애영은 더 이상 팀장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앞서가는 강수정에게로 뛰어갔다.

신해량은 팀원들이 전부 오피온에서 나오고 마지막으로 김가영과 유금이가 나오는 것까지 확인한 뒤 가장 후미에 서서 행렬을 따라갔다.


* * *


중앙엘리베이터는 제2해저기지에 멈춰 있었다. 신해량은 온갖 지형지물에 사람들을 숨겨두고 엘리베이터를 부를지 말지 결정을 기다리는 백애영을 쳐다봤다.

박무현은 중앙엘리베이터가 반드시 2해저기지에서 멈춘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중앙엘리베이터를 테러범 측에서 통제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엘리베이터가 혼자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이상함을 느껴 경계할 것이고 즉시 대응이 가능하도록 엘리베이터 안에 전투 인력을 배치해뒀을 확률이 높았다.

“전부 대기해.”

비단 신해량 뿐만 아니라 백애영과 서지혁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

“나오라고 할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마.”

신해량은 팀원들에게 단단히 경고한 뒤 백애영에게 손짓했다. 백애영이 버튼을 누르자 제2해저기지에 있던 중앙동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그때.

“나는 못 하겠다고! 사람한테 총 쏘기 싫단 말이야!”

청룡동 쪽에서 커다란 소음과 함께 짜증스러운 비명이 날아들었다.

“너희들끼리 해! 난 이딴 미친 짓 하기 싫어!”

신해량의 손짓 한꺼번에 서지혁과 백애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해량은 남은 인원이 자리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살폈다.

백애영은 지시한 것보다 더 가까이 청룡동 쪽으로 접근해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슈란이었던 탓이다.

“너 혼자 꺼지든 말든 알 바 아닌데 총은 두고 가.”

“총 내려놓으면 나 쏠 거잖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총을 겨눈 채 뒷걸음질 치는 슈란이 보였다. 중앙동에서도 볼 수 있는 위치에 모습이 노출된 것이다. 슈란의 궤적을 보면 탈출정 포트 쪽에서부터 뒷걸음질 치며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만들 해! 슈란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너희는 들어가 있어.”

총을 겨눈 채 슈란과 대립하는 하오란과 웨이치의 모습도 드러났다. 그 사이로 하이윤이 끼어들며 중재에 나섰다.

“총만 내놓으라니까?”

“배신자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 하이윤, 설마 슈란이랑 둘이 도망칠 생각은 아니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셋 다 총 내려!”

하이윤의 윽박에 슈란이 움찔하며 총구를 내렸고 하오란도 마지못해 총구가 천장을 향하도록 했다. 웨이치는 총에서 두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슈란. 총 이리 줘.”

하이윤의 명령에 슈란이 쭈뼛거리며 어깨에 두르고 있던 건슬링을 풀었다. 하이윤에게 총을 건네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

하이윤은 신경질적으로 슈란의 총을 하오란에게 집어 던지듯 건넸다.

“하이윤. 네 총도 넘겨.”

“슈란 총 넘겼으니까 돌아가.”

터무니없는 요구에 하이윤은 대꾸도 하지 않고 명령했다. 그러나 팀원이 호락호락 말을 듣지 않자 하이윤은 총을 장전하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내가 여기서 무장해제 할 이유는 없어. 내 안전은 내가 지켜.”

“네, 네. 그러시겠죠.”

가장 뒤편에 서 있던 리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에 가려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껏 하이윤을 비아냥거리는 태도였다.

그렇게 아주 잠깐의 대치가 이어졌다. 리웨이가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자 하오란과 웨이치는 슈란의 총만 챙겨 든 채 돌아섰다.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는 발소리가 긴장감으로 팽팽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백애영은 신해량이 신호만 주면 당장이라도 청룡동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서 명령을 내리라는 듯 신해량을 힐끗거리기도 했다.

하이윤은 팀원들이 탈출정 포트로 돌아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후 총을 거뒀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먹이는 슈란을 달래며 진정시켰다.

“슈란. 천천히 숨 쉬어. 우선 잠수정 포트로 가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신해량의 신호를 받은 백애영이 곧장 복도를 가로질렀다.

중앙동 쪽에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총을 겨누기도 전에, 백애영이 먼저 두 사람 앞에 도착해 하이윤의 머리에 대고 총구를 겨눴다.

“총 내려놔.”

“애영아!”

백애영을 발견한 슈란의 눈망울이 커졌다. 하이윤은 총을 집어 들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머리에 겨누어진 총 때문이 아니라 백애영의 어깨너머에서 청룡동 쪽으로 다가오는 신해량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신해량은 말없이 세 사람에게 다가와 하이윤이 메고 있던 총기 멜빵을 풀었다. 그리고 힘을 조절하여 중앙동 쪽으로 미끄러져 가도록 소총을 밀어 던졌다.

“잠수정 포트로 가지.”

신해량의 말에 백애영이 휙 고개를 들었다.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신해량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짓한 뒤 잠수정 포트로 향했다. 마침 중앙동에서 조용히 접근한 서지혁이 총을 챙겨 들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많은 사람이 숨어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적막한 분위기였다.

“탈출정 포트에서 누가 나오지 않는지 감시해.”

신해량은 총을 든 백애영에게 후방을 맡긴 채 슈란과 하이윤을 데리고 잠수정 포트로 향했다. 슈란은 백애영이 잘 따라오는지 연신 뒤를 힐끔거리기 바빴다.

신해량은 잠수정 포트 안이 안전한지 빠르게 살펴본 다음 슈란과 하이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팀장님.”

그런 신해량에게 백애영이 다가와 은밀히 속삭였다.

“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슈란을 탈출시킬 거야.”

예상치 못한 답변에 백애영의 눈이 커졌다.

“슈란을 내보낼 수 있어요?”

“그래.”

신해량이 포트 안으로 들어갔다. 라팀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잠수정 대부분은 사용이 불가했고 메리 길모어 한 대만 작동이 가능했다.

작동 가능한 잠수정 안을 확인하려고 하자 슈란과 하이윤이 동시에 신해량을 붙들려 했다. 백애영은 반사적으로 총을 집어 들었고 하이윤이 먼저 두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신해량은 잠수정 안쪽을 살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슈란에게 말했다.

“슈란. 타라.”

“나?”

잠수정 안에는 사팀의 썸머가 잔뜩 겁을 먹은 채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저 두 사람 먼저 탈출시킬 생각인데, 동의하나?”

신해량이 눈썹을 까닥이며 슈란과 썸머를 가리키고 하이윤을 쳐다봤다.

“동의하지 않으면 총이라도 쏘려고? 슈란, 얼른 타.”

슈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당장이라도 백애영에게 달려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만 혼자 나가라고? 애영아, 너는?”

“뭘 바보처럼 서 있어! 얼른 타라니까.”

보다 못한 백애영이 슈란의 등을 떠밀며 잠수정에 태웠다. 약간의 말씨름이 오갔지만 슈란은 끝내 썸머와 함께 해저기지를 떠날 수 있었다. 백애영은 잘됐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정작 신해량은 개운한 마음으로 안도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박무현의 말대로였다.

신해량은 잠수정에 정말로 썸머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겁먹은 썸머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형용하기 힘든 감정으로 목이 옥죄었다.

한낱 치과의사가 퇴사 전 남기고 간 말이라기엔 이건 예언에 가까운 수준 아닌가.

“슈란의 탈출을 도운 건 고맙다고 해두지.”

하이윤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하이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해량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총은 어디서 났지?”

“받았어. 내가 가지고 들어온 건 아니야.”

“무한교의 소행인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

하이윤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언제부터 그런 정신 나간 종교를 믿은 거지?”

“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제4해저기지를 점령하는 게 목적일 뿐이야. 종교쟁이들이 하는 말은 믿지 않아.”

신해량은 눈썹을 휘더니 턱을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1해저기지부터 3해저기지까지 무한교가 점령했다는데, 사실인가?”

“맞아. 어디로 가든 너희는 그 정신 나간 광신도들을 만날 거야. 탈출정이 가장 안전할 텐데, 글쎄. 우리 걸 양보할 생각은 없어.”

하이윤과의 문답이 길어질수록 신해량은 박무현의 말은 전부 사실이라는 확인만 받고 있었다. 그의 말을 믿어보고자 하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다.

해저기지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떨던 치과의사의 낯이 재차 떠오른다. 신해량은 그의 불면이 무엇에서 기인하였는지 어렴풋 짐작해볼 수 있었다.

박무현은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두려워하던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으나 평범한 치과의사는 이곳에 일어날 테러를 미리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극도로 불안해했다. 새벽에 잠 못 이루던 초췌한 얼굴과 어떻게든 신해량과 백애영, 서지혁을 비롯한 엔지니어 가팀 사람들을 데리고 대한도에서 나가고 싶어 하던 태도까지, 모든 게 이해됐다.

이 자리에 박무현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유약한 치과의사가 지금 이 상황에 놓였다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졸도했을지도 모르니. 기절한 성인 남성을 챙기려면 불필요한 인력 소모가 생기기 마련이다.

“무장한 인원은 얼마나 되지?”

“몰라. 이 정도면 성실히 대답한 거 같은데 이만 보내주지그래? 아, 용병을 고용했다고는 들었다.”

신해량은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얻었는지 포트 입구 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러나 하이윤은 잠수정 포트를 나가는 대신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내 총 돌려줘.”

“네 총은 내 팀원이 이미 가지고 갔다. 이건 나팀에게서 뺏은 총이니 네 것이 아니고.”

신해량은 단호하게 하이윤의 부탁을 거절했다. 인상을 쓰며 신해량을 더 설득하던 하이윤은 결국 포기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백애영은 내심 하이윤을 데려가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슈란이 무사히 탈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중앙동으로 가서 합류하자.”

“네.”

탈출정 포트로 향하는 하이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복도 모퉁이를 돌아 중앙동을 향해 달렸다.


* * *


“왜 이제 와요! 쫄려 죽는 죽 알았네.”

“총 쥐여줬잖아.”

중앙동 엘리베이터는 이제 막 3해저기지를 지나 4해저기지로 내려오고 있었다. 신해량은 엘리베이터 가까이서 기습할 자리를 찾아 몸을 숨겼다. 마침내 중앙엘리베이터가 제4해저기지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의 두꺼운 문이 열렸다.

예상했던 대로 그 안에는 총으로 무장한 검은 옷의 괴한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바짝 긴장한 자세로 총구를 겨눈 채 엘리베이터 주변을 살폈다. 4해저기지에서 엘리베이터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모양이었다.

저들을 죽이지 말고 생포해서 정보를 더 뜯어낼지 신해량이 고민하며 결정을 잠시 유예하던 중 정상현과 이지현이 숨어있는 쪽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괴한들이 곧장 소리가 난 쪽으로 총구를 돌렸고 신해량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냈다.

탕, 타앙-

귀를 찢는 총성이 울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괴한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신해량은 곧장 뛰쳐나가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테러범이 들고 있던 총 하나를 왼쪽 어깨에 메고 다른 하나를 장전하여 오른쪽 어깨에 견착했다.

“엘리베이터에 타!”

신해량이 외침과 동시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내달렸다. 백애영과 서지혁 끝까지 사주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강수정은 유금이와 김가영을 챙기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가장 먼저 중앙엘리베이터에 타 구석에 몸을 숨긴 건 정상현이었다. 김재희는 강수정 다음으로 이지현과 나란히 엘리베이터 탈 수 있었다.

신해량은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몸을 넣으며 백애영과 서지혁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등진 채 뒷걸음질로 천천히 다가왔다. 백애영과 서지혁이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 타려던 순간.

“자, 잠시만! 우리도 데려가!”

어디 숨어있었던 건지 엔지니어 마팀과 아팀 사람들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뛰어나왔다. 신해량은 그들에게 즉시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멈춰!”

그리고 서지혁과 백애영에게 어서 엘리베이터에 타라며 턱짓했다. 두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몸을 던져넣었다. 모든 인원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걸 확인한 신해량이 명령했다.

“문 닫아.”

냉랭한 신해량의 목소리를 듣고 엔지니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신해량은 망설임 없이 그들 발치를 향해 총을 쐈다. 대여섯 정도 되던 인원이 갑작스러운 총격에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백애영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자신의 팀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조작반을 뜯어냈다.

“아까 말한 대로 하면 되죠?”

백애영의 물음에 신해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한교 신도에게서 얻은 총기를 살폈다. 박무현이 말한 대로 백애영과 서지혁, 그리고 자신이 완벽하게 무장을 한 채 중앙엘리베이터에 탔다.

이제 그의 말대로 대한도를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박무현이 알지 못하는 예측 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터.

신해량은 엘리베이터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훑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안전한 탈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의 목숨을 고작 한 사람의 말에 기대어 떠맡기다니. 스스로 선택하고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자신은 박무현의 말을 믿고 따랐을 것이다.

치과의사가 한 말은 선뜻 신뢰하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신빙성이 있었고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길로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기에.


* * *


“이제, 괜찮은 건가요?”

“예.”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유금이의 질문에 신해량은 담담히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는 제3해저기지를 지나 제2해저기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사이 정전이 한번 일어나 엘리베이터가 멈추긴 했으나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있다는 압박감이 사람들을 짓눌렀지만 머잖아 대기 전력이 들어왔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로 몇 번 더 정전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새 다들 익숙해진 건지 비명을 지르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3해저기지를 무시하며 부드럽게 상승했다. 몇 번 패널을 만져보던 백애영은 엘리베이터를 확실하게 고장 내뜨려야겠다며 총을 쏴 갈기려 했다.

그 모습을 본 강수정과 이지현이 깜짝 놀라서는 백애영을 말렸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며 조금씩 제어반을 더 손보았다.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을 하려는 건지 더 섬세하게 고장을 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서지혁이 슬쩍 합류하여 세 사람과 같이 머리를 맞댔다.

제2해저기지가 가까워지면서 신해량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총을 들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일행들을 모조리 벽에 붙이고 엘리베이터 입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2해저기지에 가까워지면서 속도가 줄어들자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다.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점점 느려지던 엘리베이터는 2해저기지에 다다르자 멈춰서는 대신 느릿한 속도 도착지점을 지나 그대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장한 테러범들과 대치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속도를 높여 제1해저기지를 향해 솟구쳤다. 긴장이 풀렸는지 여기저기서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신해량도 긴장한 몸을 풀며 자리에 앉았다. 그 옆으로 김재희가 스리슬쩍 다가왔다.

“팀장님은 모르는 게 없나 봐요.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아는 사람 같아요.”

“몰라.”

“에이, 다 알면서. 이미 비슷한 일을 겪어보기라도 한 거 같은데, 맞죠?”

김재희가 헛소리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었지만 어디서 저런 자극을 받아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신해량은 입을 닫고 눈을 감아버렸다.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한 팀장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김재희의 눈빛에 더욱 생기가 돌았다.

“팀장님, 저한테만 말해 봐요. 이번이 몇 번째에요?”

오피온에서는 다 죽은 눈으로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놈이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재희야. 내가 모르는 게 없어 보여?”

신해량이 감았던 눈을 뜨며 김재희를 바라봤다.

“네. 가보지도 않은 청룡동 사정을 아는 거부터 이상하잖아요. 해저기지가 테러범한테 점령된 건 어떻게 알았고? 게다가 제가 아는 신 팀장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할 거 같진 않은데.”

눈이 마주치자 김재희가 숨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신해량은 현재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 대한도까지 올라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호기심 많은 팀원의 궁금증을 적당히 해소해주기로 했다.

“치과의사 선생님께서 퇴사하기 전에 언질을 주셨어. 나는 그걸 적당히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고.”

“어? 무현 씨요?”

엉덩이를 뒤로 밀며 물러나던 김재희가 고개를 추켜들었다. 그리고 도로 신해량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현 씨가 뭐라고 했는데요? 안 그래도 해저기지 적응 못 해서 힘들어하더니 그 사람 뭐가 있긴 있었구나.”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걸 알아야 해저기지에 남든 말든 하죠.”

“해저기지에 왜 남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나 해.”

“저는 여기서 나갈 생각 없는데요…….”

김재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테러범에게 점령당하고 물이 새는 해저기지가 뭐 좋다고 남아 있으려고 하는지.

신해량은 물끄러미 김재희를 바라봤다. 치과의사가 해저기지를 떠난 뒤, 따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무한교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보석 같은 거를 따로 소지한다고도 했는데…….

문득 김재희 귀에 박힌 피어싱 하나가 유달리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신해량은 약에 취해 지껄이던 팀원의 헛소리가 떠올랐다.

“재희야.”

“네에.”

“너 무한교에 들어갔어?”

신해량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오로지 김재희에게만 들릴 정도로.

뜻밖의 물음에 김재희가 조금 놀란 눈으로 신해량을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테러를 일으킬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아뇨? 그걸 알았으면 외벽 수리하러 안 나갔죠…… 근데 제가 무한교인 거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무현 씨가 저에 대해 이야기하던가요? 제가 모르는 저에 대해 말해주진 않았어요? 제가 무한교인 것도 무현 씨가 얘기해준 거죠?”

기관단총처럼 퍼붓는 김재희의 연속질문에 신해량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탈출 방법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어.”

“진짜네. 진짠가보다.”

김재희는 자신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말에도 큰 긍정을 받은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기뻐했다.

“구원자님은 이미 여기 없었던 거네요.”

근데 어떻게 해저기지를 나갔지? 의식이 언제부터 이뤄졌길래……. 김재희가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더니 생각에 잠기며 점차 말이 없어졌다.

쉼 없이 재잘대던 팀원이 조용해지자 신해량은 엘리베이터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겨우 한숨 돌리며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김재희가 신해량을 불렀다.

“팀장님.”

“왜.”

“한국 돌아가면 무현 씨 만나러 갈 거죠?”

“…….”

“저도 같이 가요.”

그 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정전은 아니었다. 일정한 속도로 1해저기지를 지나친 엘리베이터가 0층에 닿지 못하고 어둠 속에 우뚝 멈춘 것이었다. 이 또한 박무현이 말한 대로였다. 그렇다면 신해량은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대한도를 나갈 생각부터 해.”

김재희의 등을 대충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신해량이 백애영을 불러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비상구출문을 열고 하나씩 엘리베이터 위로 올려보냈다.

여태 나서는 법 없던 김재희가 그때부터는 몹시도 협조적이었다.


* * *


대한도에 도착하기 직전, 엘리베이터는 완전히 고장 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적당히 손을 본 줄 알았던 엘리베이터를 엔지니어 넷이 머리를 맞대어 제대로 아작낸 모양이었다.

모든 인원이 엘리베이터 천장 위로 올라왔다. 대한도는 강수정조차 올라가기 힘들 만큼 애매한 위치였다.

신해량은 서지혁을 불러 와이어로프가 끝없이 이어진 천장을 가리켰다.

서지혁은 어렵지 않게 천장에 있는 제어반을 정확히 조준하여 사격했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0층 입구로 기어 올라갈 만한 높이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서지혁과 백애영은 신해량의 지시에 따라 먼저 대한도에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당장 근처에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서지혁이 신해량에게 알렸다.

마지막으로 강수정이 엘리베이터 천장에서 탈출하고 신해량이 곧장 뒤따라 대한도 땅을 밟을 즈음. 불길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간발의 차였네요.”

강수정이 식은땀을 훔치며 아득히 멀어져가는 엘리베이터를 힐끔 내려다봤다.

“다들 올라왔으면 바로 움직이시죠.”

그 짧은 사이에 안전한 곳을 봐둔 서지혁이 일행들을 이끌었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던 백애영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행렬에 자연스레 합류하며 신해량에게 보고했다.

“주변은 거의 다 정리했어요.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인원이 별로 없던데요? 근데 해저기지만 아니라 대한도도 완전히 점령됐어요. 본부는 완전히 장악당했고요.”

백애영은 검은 옷과 발라클라바로 완벽히 무한교 신도처럼 변장한 상태였다.

“그새 거기까지 다녀왔어?”

서지혁이 혀를 내둘렀다. 백애영은 답답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와 발라클라바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병원도 개판이더라고요. 빨리 뜨는 게 낫겠어요.”

신해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숨겨놓은 보트가 있어. 워낙 소형인데다 외진 곳이라 테러범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강수정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보트? 우리 팀에 보트가 있어요? 나라에서 지원 안 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보트는 섬기슭에 숨겨놨습니다. 바로 이동하시죠.”

어리둥절한 강수정의 질문에 신해량은 필요한 대답만 하고 움직였다.

박무현은 오로지 해저기지를 벗어나는 데에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고 떠났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마치 해저기지를 나오기만 하면 나머지는 네가 다 알아서 할 거라는 걸 믿는 사람처럼.

실제로 신해량은 미리 그려둔 계획대로 사람들을 통솔하여 보트를 숨겨둔 곳까지 이동했다. 중간중간 총격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이거 타도 되는 거 맞아요?”

“멀쩡해.”

“중간에 가라앉는 거 아니고요?”

“넌 헤엄쳐서 오든가.”

도착한 곳에 덩그러니 놓인 보트를 보고 사람들을 걱정하거나 우려를 표했다. 보트가 상당히 낡아 보이는 탓이었다. 서지혁의 불만을 짧게 일축한 신해량이 보트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낡아빠진 것처럼 보여도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보트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박무현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해저기지를 떠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트 연료를 넉넉히 채워둔 것이 지금 빛을 발했다.

팀원들과 한국인 국적의 연구원 두 명까지 모두 보트에 탑승했다. 신해량은 곧장 대한도를 벗어났다. 이곳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접근한 이들이 있었지만 서지혁과 백애영의 선에서 정리가 됐다. 보트까지 날아든 총알은 없었다.

유유히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트를 보며 탈출정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팔을 휘적거렸다. 강수정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팀장님. 저 사람들도 다 태워서 가나요?”

“아뇨. 이미 정원 초과입니다.”

자기들도 데려가라며 소리치는 괴성들을 무시하고 신해량은 목적지인 마셜 제도를 향해 보트를 몰았다.

“퇴사 한 번 하기 더럽게 힘드네.”

서지혁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보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신해량과 서지혁이 퇴사 날이기도 했다. 이미 숙소는 다 정리했고 짐까지 싸두었다. 퇴사하는 날까지 업무를 보던 두 사람은 어뢰를 맞고 주작동의 연구센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해저기지에서 백호동 탈출정이 고장 난 것을 확인한 뒤 중앙동으로 이동하던 중, 신해량은 잠 못 이루던 박무현이 새벽마다 매달리듯 붙어 있던 원형 창문을 보았었다. 창밖은 소름 끼치도록 어둡고 캄캄했고 박무현이 넋을 놓고 구경하던 연구센터의 불빛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잠을 자지 못해 핼쑥해진 얼굴로 창밖의 연구센터를 보던 집착적인 눈빛을 신해량은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건 필시 감시에 가까운 태도였다.

핸들을 쥔 다부진 손에 힘이 그득 들어갔다.

당장 그 의문스러운 치과의사를 찾아가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 * *


신해량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팀원들의 퇴사와 계약 문제 등 처리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쉬웠던 건 역시 박무현에 대한 조사였다.

해저기지를 그만둔 치과의사의 현 거주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게 쉬웠다. 박무현은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민간인이었으니까. 조금만 알아보고자 하면 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손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신해량은 박무현은 알지 못했다. 정말 그가 평범한 치과의사라면 제게 말해주었던 정보들은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제 팀원들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던 건지. 그들의 내부사정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선생님.”

그토록 두려워하던 해저기지를 나갔음에도 어째서 아직도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는 건지.

“……해량 씨?”

생기를 잃고 퍼석해진 눈이 수문장처럼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박무현의 손에는 먹을거리가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해량 씨…… 살아 계셨군요.”

“예. 덕분에.”

신해량을 발견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정없이 요동치는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다. 버석하게 말라 있던 흰자위가 물기를 머금고 반짝였으나 눈물이 넘쳐흐르지는 않았다.

“다행입니다. 다른 분들은요?”

“한국인은 전부 생환하였습니다.”

박무현이 두 손으로 벌게진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 말만 연신 되뇌면서.

신해량은 간신히 울음을 참는 듯한 박무현을 지켜보며 턱을 질끈 물었다. 목을 옥죄는 듯한 불편감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무현 씨.”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제 잠은 잘 주무십니까.”

“아.”

박무현의 낯짝은 해저기지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 특유의 피로감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보다 더한 우울감과 권태로움까지 느껴졌다. 해저기지를 뛰쳐 나가놓고 상태는 왜 더 나빠진 건지. 신해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부터 푹 잘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무현의 눈빛은 바다 밑에서나 육지에서나 거짓 한점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시간을 내주시죠.”

박무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해량이 막아서고 있는 현관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집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불편하면 근처 카페라도…….”

“상관없습니다.”

박무현은 신해량이 어떻게 자신의 집 앞까지 찾아왔는지 일절 묻지 않았다. 아예 궁금해하지도 않는 거 같았다. 오히려 너라면 당연히 찾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믿음과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기묘한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신해량은 속이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들어오세요.”

복도에서 홀로 20여 분간 지켜보고 있던 현관문이 박무현의 손에 의해 열렸다. 신해량은 그를 향해 가볍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서류상으로는 알 수 없었던 박무현에 대해 제대로 털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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