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정 포트 한쪽 벽면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 모니터에는 언제 발사된 건지 모를 탈출정이 조그마한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사출된 탈출정은 심해저대를 벗어나 일직선으로 해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중심해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속도가 떨어지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심해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저 탈출정에 누가 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백호동 숙소에서 가장 먼저 도망쳐 나온 사람일 거다.
신해량은 퇴사 당일까지 업무에 치여 해저기지의 외벽 수리를 하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백애영은 몸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던 중이었다.
“팀장님, 저거…….”
신해량 옆에서 같이 모니터 화면을 보던 서지혁이 말을 잇지 못했다.
백애영은 물이 차는 숙소에서 가장 먼저 금괴들을 챙겼고 이후 복도에 마주친 유금이를 챙겨 탈출정 포트로 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몸을 떨고 있는 유금이에게 담요 한 장을 건넨 뒤 신해량의 오른편에 서서 물었다.
“탈출정 고장 난 거 어떻게 알았어요?”
“몰랐어.”
신해량은 이제 막 심해저대를 벗어나고 있는 화면 속의 탈출정 세 대를 바라봤다.
작은 그림처럼 표시되어 해수면을 향해 올라가는 탈출정에는 신해량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놈들이 타고 있었다. 네 말을 어떻게 믿냐는 둥 우리를 내보내고 너희들끼리 타고 나갈 것 아니냐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다 기회가 생기자 냉큼 탈출정에 올라탔다.
그 결과가 저기 있다. 점심해수층을 간신히 벗어난 탈출정은 중심해층에 들어서자마자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곧 동력을 완전히 잃고 심해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가장 먼저 발사되었던 탈출정은 어느덧 심해저대까지 내려와 있었다.
“저걸 상현이가 그냥 타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치? 아쉽게 됐다.”
김재희는 바닥에 넋이 나간 채 앉아있는 정상현 옆에서 생글거리며 떠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강수정이 조용히 좀 있자며 김재희를 끌고 구석으로 데려갔다.
“몰랐는데 왜 탈출정 타지 말라고 한 거예요? 고장 났으니까 타지 말라고 한 거 팀장님이잖아요.”
신해량의 대답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백애영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누가 말해줬어. 백호동과 주작동 탈출정은 고장 났으니 비상시 사용하지 말라고.”
신해량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얘기했으며 백애영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요?”
“……박무현.”
신해량의 대답에 백애영 뿐만 아니라 서지혁의 눈까지 휘둥그레졌다.
“네?”
“이빨 선생님이요?”
신해량은 대답 대신 침묵으로 긍정했다.
“뭐야. 치과 선생님 착한 줄 알았는데 우리 다 죽으라고 탈출정 고장 내고 갔나?”
“그럴 리가 있냐, 멍청아.”
서지혁의 등을 후려친 백애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망가뜨리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고장 낼 수 있는 건 줄 알아?”
“그 치과의사가 스파이 같은 거였을 수도 있지, 아! 그만 때리고, 말로, 아오! 지현아아!”
백애영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서지혁은 갖은 엄살을 피우다가 이지현에게로 조르르 달려갔다. 백애영은 혀를 쯧쯧 차며 떫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신해량에게 물었다.
“설마…… 아니죠? 그런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어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했어.”
“그럼 그 인간이 진짜로 탈출정을 망가뜨린 거예요?”
“아니. 나팀의 소행이라더군.”
백애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새끼들은 또 왜요?”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하던데.”
무표정한 신해량과 달리 백애영의 얼굴엔 다채로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탈출정을 고장 낸 나팀을 잡아 족치고 싶은 마음과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팀장에 대한 의문 등.
“그것도 치과의사가 말해준 거예요?”
“그래.”
신해량은 순순히 인정했다. 백애영은 감정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풀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어수선한 탈출정 포트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해요. 치과의사가 그런 걸 어떻게 알지? 일본 쪽에서 이민 권유라도 받았대요? 그래서 알려준 건가? 그런데 일본 쪽에서 한국 치과의사를…… 왜?”
신해량도 백애영의 의문에 긍정하며 대답했다.
“나도 치과의사가 가지고 있던 정보의 출처가 궁금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어.”
“또 뭐라고 했는데요?”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해저기지에 온 건지 아는 눈치였어. 나와 지혁이뿐만 아니라 네 계약만료일도 정확하게 이야기하더군.”
“말도 안 돼.”
백애영이 눈을 부릅뜨며 신해량을 쳐다봤다.
“난 그런 소리 흘린 적 없어요. 설마 서지혁이 치과 가기 싫어서 다 분 거 아니에요?”
그러더니 말릴 새도 없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서지혁을 잡도리하기 시작했다. 신해량은 굳이 백애영을 말리지 않았다. 강수정과 이지현도 다 이유가 있어서 백애영이 저러는 거겠지 하며 방관했다.
“넌 항상 주둥이가 문제야.”
“나 아니라니까?”
외벽 수리 중이던 엔지니어 가팀은 주작동 연구센터로 날아들던 어뢰를 보았다. 주작동을 통해 기지로 복귀하려던 가팀은 어쩔 수 없이 백호동으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탈출정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숙소에 남아 있던 백애영은 탈출정 포트 앞에서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탈출정은 이미 발사된 것이 하나 있었다. 백애영 말에 따르면 비상 알람이 울리자마자 뛰쳐나가던 놈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탈출정에 올라탄 놈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좁다란 탈출정 안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절망을 맛봤을 것이다.
신해량은 연구센터의 폭격을 직접 목격했고 백호동 숙소에는 물이 차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팀원들을 곧장 탈출정에 태웠다. 남은 탈출정이라도 이용해서 팀원들을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기 먼저 나가 보겠다며 신이 난 정상현을 탈출정에서 끌어낸 건 그 때문이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김재희도 어리둥절한 채 팀장의 돌발행동을 지켜봤다.
백호동 탈출정은 고장 났다. 사용하면 안 된다. 그 말을 한 건 다소 충동적이었다.
탈출정 포트는 혼란에 휩싸였다. 신해량의 말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못 미덥지만 팀장의 명령이기에 마지못해 따르는 이들까지.
신해량도 탈출정의 고장 유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불현듯 떠오른 치과의사의 말이 마음에 걸려 선택을 유예한 것에 가까웠다.
해저기지를 떠나던 치과의사가 고해성사처럼 내뱉은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불면증으로 인한 심신미약과 그로 인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지껄이는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박무현의 말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해저기지에 입사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치과의사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
박무현이 대한도를 떠난 후, 신해량은 의심스러운 치과의사의 정체를 확실히 하기 위해 그간의 행적을 따로 조사해 보았다. 결과는 허무했다. 박무현의 삶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불우하고 고달프긴 했으나 신해량은 그보다 처절하고 파탄 난 인생들을 많이 봐왔다. 박무현에게선 특별할 것도 특이한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는 소리다.
잠시 고민하던 신해량은 방향을 바꿔 박무현이 말한 정보를 좇았다. 실마리는 거기에서 잡혔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라고 정보를 알려주는 거처럼 보이긴 했으나 박무현은 자신이 그 일을 이미 겪어본 사람처럼 말하곤 했다. 시제가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뒤죽박죽이었다. 진실은 과거에 있음을 신해량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고 섣불리 박무현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어떻게 미리 경험했다는 건지.
하지만 박무현이 했던 말을 아예 무시해버릴 수도 없었다. 그는 신해량이 알려준 적 없는 ‘6억’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을 속이고 혼란을 주입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박무현은 그저 상대가 믿든 말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어느 모로 보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의 박무현은 무언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초조하고 다급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한 채 뱉어버린 이름이 하나 있었다.
무한교. 사이비 종교 혹은 테러리스트 등으로 설명하던 박무현의 입에서 딱 한 번 그 이름이 나왔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에 가까웠다.
단서를 찾은 신해량이 직접 알아본 결과, 해저기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종교인이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종교도 더러 있었다. 무한교도 그중 하나였다.
신해량이 상식적인 선택을 멈추고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팀원들의 탈출을 보류한 뒤 이미 사출된 탈출정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결정한 건 그 때문이었다.
무한교가 실제로 해저기지 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테러로 추정되는 폭격이 일어났다.
“그들은 언젠가 해저기지를 테러할 겁니다.”
박무현의 말이 실현되고 있었다.
* * *
탈출정은 고장 났고 해저기지에는 물이 새고 있다. 여기서 오래 버텨봐야 붕괴 위험이 있는 해저기지와 함께 수장될 뿐이다. 그렇다면 팀원들과 한국 국적의 연구원을 데리고 어떻게 탈출을 해야 좋을까.
신해량은 포트 안에 남은 팀원들을 둘러보며 차분히 탈출 경로를 머릿속에 그렸다.
백호동 탈출정이 고장 났다는 말은 곧 주작동의 탈출정도 고장 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박무현이 그렇게 말했으니. 과연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정보일까.
이 상황에서 정말 청룡동과 현무동의 탈출정을 포기한 채 중앙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게 맞는 걸까. 그게 정녕 최선이라 할 수 있나. 신해량의 미간이 좁아졌다.
“김가영 씨와 연락됩니까.”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떨고 있던 유금이가 고개를 들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신해량을 올려다보는 목이 빠듯해 보였다. 신해량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으며 몸을 낮췄다.
“가영 언니요?”
박무현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것이고 어디까지 따를 건지는 신해량의 몫이었다. 어느 정보를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릴지도 신해량의 손에 달렸다. 만약 사람의 목숨이, 그것도 한국 국적 민간인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우선적으로 확인해볼 것이 있었다.
“가영 언니는 왜, 아…… 언니 주작동에 있을 텐데.”
신해량을 멀뚱히 올려다보던 유금이의 안색이 삽시간에 파리해졌다.
“아까 패드 챙겼잖아요. 한 번 확인해보세요.”
유금이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백애영이 무언가 떠올린 듯 유금이의 가방을 가리켰다. 유금이가 눈을 크게 뜨며 반쯤 젖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패드를 꺼내 들었다. 가방이 젖어 있었지만 작동은 잘 되는지 패드에 불빛이 들어왔다.
백애영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해저기지 사내 게시판을 확인했다. 그 옆으로 서지혁이 바싹 붙어 같이 좀 보자고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연락은 안 되는데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어요. 혹시 이거 가영 언니일까요?”
유금이가 눈썹을 휘며 말했다. 신해량은 말없이 유금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금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패드를 건넸다.
신해량은 화면에 적힌 게시글을 읽었다.
주작동 77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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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방 밖에 물이 찼어요!
수압 때문인지 나갈 수도 없고 문도 안 열려요!
여기에 5명 있어요! 살려주세요ㅠㅠ
현재 해저기지 내부는 전화가 터지지 않았고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그러나 내부인트라넷은 접속이 됐다. 신해량은 기지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몇 개 더 살펴본 후 유금이에게 패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예. 김가영 씨가 맞는 거 같습니다.”
최초로 쓴 게시글에 한글로 쳤다가 영어로 바꾼 흔적이 있었다. 말투도 그렇고 이모티콘도 그렇고 글을 쓴 사람은 한국인이 확실했다. 유금이가 여기 있으니 지금 갇혀있다는 사람은 주작동 연구원인 김가영일 확률이 높았다. 주작동 숙소에 김가영이 갇혀있을 거란 언질을 이미 받기도 했으니.
“부팀장님.”
“네, 팀장님.”
신해량의 부름에 강수정이 가까이 다가왔다.
“저와 지혁이는 주작동으로 가겠습니다. 부팀장님은 애영이와 사람들을 데리고 오피온에서 대기하시죠.”
“같이 움직이지 않고요?”
“주작동 탈출정도 고장 나 있을 겁니다. 갇혀있다는 사람들만 구조해 돌아올 거니 단체로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팀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주작동에 다섯 명이 있다는데 둘이서 괜찮겠어요?”
강수정은 한 명이라도 더 주작동 팀에 끼워 넣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인원이 마땅치 않았다. 정상현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김재희도 적극적으로 말을 들을 거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다리가 의족인 녀석에게 사람을 구하라며 바닷물에 담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수정이 두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그러면 오피온에 남을 인원의 전력이 줄어든다.
하는 수 없이 강수정의 시선이 이지현에게 닿았다. 그러자 서지혁이 펄쩍 뛰며 끼어들었다.
“부팀장님, 정말 서운합니다? 저를 이렇게 과소평가하실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저 멧돼지 같은 팀장님 몸을 봐요. 혼자서 연구원 다섯 명은 거뜬할 텐데 저까지 가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지현이는 내가 데리고 갈게.”
신해량은 그 대화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다섯 명이 77호에 갇혀있다고 했다. 그런데 박무현은 김가영만 짚어 이야기했다. 만약 사람이 더 있었다면 그들을 아울러 구해달라 말했을 거 같은데, 마치 거기엔 처음부터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는 것처럼…….
“애영아.”
신해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애영을 불렀다.
“네, 갑니다.”
포트 입구에 서서 낙하산 줄을 확인하던 신해량 옆으로 백애영과 서지혁이 조용히 다가왔다. 신해량은 목소리를 낮추고 두 사람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해저기지 내에 무장 세력이 있어.”
“…….”
박무현의 말이 하나씩 들어맞고 있다. 아직 확인해볼 게 남아있긴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일이 벌어진다면 현재 해저기지는 생각보다 더 위험한 상태였다.
“나팀이 총기로 무장을 하고 현무동에서 중앙동으로 움직일 거야. 숨어서 마주칠 일 없도록 해.”
“그럼 우리부터 당장 이동해야겠는데요?”
서지혁의 낯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탈출정 포트 안에 있는 팀원들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총을 어떻게 갖고 들어왔지? 팀장님은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요?”
서지혁의 물음에 백애영이 설마 하는 얼굴로 신해량에게 따지듯 쏘아붙였다.
“그것도 무현 씨가 알려줬다고 할 거예요?”
신해량은 말없이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치과 선생님이 알려준 거 맞아.”
“미치겠네. 그 인간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요?”
“치과의사겠지.”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투였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서지혁이 머리통을 감싸 쥐고 ‘오, 주여.’ 하며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았다.
“나팀을 만나게 되면 불필요한 전투는 피해.”
신해량은 백애영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팀원과 한국인 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것. 절대 무리해서 싸우지 말고 부상 당하지 말 것.
“기회를 봐서 나팀의 총기를 획득해도 좋아.”
마지막으로 덧붙인 신해량의 말에 백애영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뺏은 총은 제 거죠?”
* * *
예상대로 주작동 77호에는 김가영이 갇혀있었다. 다른 사람 없이 김가영 혼자 갇혀있었다.
신해량은 서지혁과 둘이서 물에 잠겨가는 잠긴 문을 강제로 개방하여 김가영을 구출했다. 물이 차는 계단을 문으로 막고 세 사람은 잠시 숨을 골랐다. 서지혁이 오피온으로 갈 거라고 김가영에게 고하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중앙동으로 가요? 탈출정은요?”
발이 미끄러져 물속에 한 번 잠수했던 서지혁은 머리칼에서 뚝뚝 흐르는 물기를 털어내며 말했다.
“고장 났대요.”
탈출정 포트 쪽을 엄지로 대충 가리키는 몸짓이 한없이 가벼웠다.
“아니. 확인하고 가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해량이 몸을 일으켰다. 신해량이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서지혁은 눈을 비뚜름하게 치뜨며 신해량을 바라봤다.
“고장 났다면서요.”
“확인할 게 있어.”
신해량은 아직도 거칠게 호흡하는 김가영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차피 탈출정 포트는 숙소에서 멀지 않았기에 김가영은 있는 힘을 쥐어짜 다리를 움직였다. 서지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장 후미에 섰다.
주작동의 탈출정은 필시 고장 나 있을 거다. 그걸 알면서도 신해량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비효율적인 충동을 따라 움직였다.
“백호동이랑 상태가 똑같네요.”
탈출정 포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탈출정은 세 대가 남아 있었지만 세 사람 중 누구도 그 탈출정을 이용하고자 하지 않았다.
서지혁은 한쪽 벽면을 가득 차지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작게 신음했다. 신해량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몸을 돌렸다.
“저게 왜, 왜 돌아오고 있어요?”
김가영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오류가 난 것 같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누가 탈출정에 손을 댔습니다. 바로 이동하시죠.”
“와…… 와아! 하하! 개자식들!”
꼴 좋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만큼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였다. 김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미련 없이 탈출정 포트를 나왔다. 그 뒤로 신해량이 따라붙었다.
세 사람은 곧장 오피온으로 향했다. 그러나 앞장서 걷던 서지혁이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가 몸을 낮추며 신해량을 돌아봤다.
“팀장님.”
“그래. 들었어.”
신해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가영에게 잠시 숨어서 대기할 것을 권했다. 김가영은 영문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서지혁과 신해량의 뜻에 따랐다.
신해량은 김가영을 데리고 음료 자판기 뒤에 몸을 숨겼고 서지혁은 그보다 앞선 곳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상황을 살폈다. 머지않아 두두두 팝콘을 튀기는 거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김가영은 미처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평온한 표정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고막을 찢는 비명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아아아악!”
“살려줘!”
신해량은 놀란 김가영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아 지그시 누르며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김가영은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동 쪽에서 중앙동을 향해 도망쳐오던 사람들이 총에 맞아 픽픽 쓰러져나갔다. 주작동 복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였기에 세 사람은 최대한 자판기 뒤에 몸을 숨기는 수밖에 없었다.
몇 번 더 총성이 울리고 비명이 낭자한 뒤 소란스럽던 중앙동이 고요해졌다. 아직 중앙동 복도에 들어서려면 거리가 꽤 남았기에 평범하게 돌아다니는 발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둔탁한 타격음과 짜증스러운 음성이 언뜻 들리긴 했으나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전의 폭풍 같던 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해저기지 안은 조용했다. 자판기 뒤에서 조심스럽게 나온 서지혁이 중앙동 쪽을 살피고는 수신호를 보냈다. 신해량은 김가영의 팔뚝을 잡아 부축하듯 끌며 중앙동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마침내 세 사람이 오피온에 도착했다.
“늦었네요.”
체육관 내 분위기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강수정은 어쩐지 화가 조금 나 있는 듯했고 정상현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백애영의 품에는 소총이 들려있었다. 개머리판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와, 백상아리. 너 진짜 나팀 총 뺏은 거냐?”
“내 거니까 넘보지 마라.”
총을 서로 네가 갖네, 내가 갖네, 투닥거리는 서지혁과 백애영을 보며 신해량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해저기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날이 야위어가던 치과의사는 정확히 신해량과 서지혁, 백애영 세 사람을 꼽아 무장할 것을 권했다. 그들이 당연히 총을 다룰 줄 아는 전투 인력이라도 되는 양.
팀원들을 통해 확인도 해보았으나 박무현에게 그런 정보를 흘린 사람은 없었다. 신해량이 직접 조사한 결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무현은 자신들의 계약과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하지만 지금, 박무현의 바람대로 셋 중 한 명이 총기로 무장을 하는 데에 성공했다.
“애영아, 수정 언니! 금이도 있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가영 언니.”
유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가영에게 달려갔다. 서로를 부둥켜 끌어안는 눈물겨운 상봉에 강수정은 두 사람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오피온 입구 쪽을 쳐다보며 김가영에게 물었다.
“다섯 명이 있다더니?”
“……거짓말이었어요. 혼자 있다고 하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까 봐.”
“아아, 그래. 잘했어.”
강수정은 김가영의 어깨를 몇 번 더 토닥이고는 신해량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나팀 놈들이 사람을 쏴 죽였어요.”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네. 다들 멀쩡해요. 애영이가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놀라긴 했는데…….”
자기 이름이 들리자 백애영이 이쪽을 휙 돌아봤다. 전리품을 자랑하듯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소총을 들어 보이며 으쓱이는 모습이 퍽 의기양양했다.
“무리에서 빠져 단독으로 움직이던 우에하라한테서 총을 뺏어오더라고요. 저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애영이 혼 좀 내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강수정은 못 미더워하는 얼굴로 신해량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 * *
“이제 어쩌죠. 나팀이 다시 현무동으로 갔으니까 현무동 탈출정을 쓰는 건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럼 청룡동으로 가자.”
“중앙엘리베이터는? 그게 가장 빠르지 않아요?”
“붕괴 위험이 있는 해저기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위험해요. 중앙동의 압력조절 장치가 언제 고장 날지도 모르는 데다가 정전이라도 되면 어떡하려고.”
“정전되면 대기전력이 작동하니까 엘리베이터 작동에는 문제없어.”
엔지니어 가팀 사람들과 연구원 둘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저기지를 탈출할 것인지 논의 중이었다. 신해량은 벤치프레스 머신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백호동과 주작동의 탈출정은 사용이 불가하며 해저기지는 현재 물이 새고 있다. 폭격으로 인해 해저기지가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럴 때는 탈출정이나 잠수정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엘리베이터는 위험성이 지나치게 컸다.
그러나 박무현은 중앙엘리베이터 사용을 추천했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다니까요?”
백애영은 아까부터 탈출정을 사용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심지어 중앙엘리베이터는 한 번 타면 다음 해저기지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대처할 수가 없다니까. 도망도 칠 수 없고 그냥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거예요. 우리 지금 해저 3천미터에 있어요. 탈출 방법으로 엘리베이터는 최악이에요.”
신해량 역시 백애영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엘리베이터보다는 탈출정을, 탈출정이 안된다면 잠수정을, 그 또한 여의치 않다면 계단을 이용하는 게 맞다.
하지만 청룡동 탈출정 포트에는 라팀이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서지혁이 다칠 거라며 박무현은 무척이나 유감스러워했다. 아니, 그걸 유감 정도로 설명하는 게 맞긴 할까. 당시 박무현 낯에 스친 감정은 두려움이나 공포에 더 가까워 보였다.
“에이, 다들 진정 좀 합시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한 게 맞아요. 그러니까 일단 청룡동 탈출정 쓸만한 게 있는지 보러 갑시다! 그러고 나서 엘리베이터 타면 되지? 안 그래요?”
“잠수정도 있지 않아요?”
“맞지. 잠수정도 있어요. 다 찾아보자고.”
“난 엘리베이터 탈래요.”
“상현아. 형이 말하잖아. 닥치고 있, 아니, 조용히 좀 있자.”
“저 이제 한마디 했거든요!”
“아우, 시끄러워. 상현이 입을 꿰매버려야겠다.”
신해량은 팀원들 사이를 바삐 오가는 서지혁을 바라봤다. 박무현의 말이 전부 사실이란 보장은 없지만, 부상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박무현이 했던 말은 모두 증명이 됐다. 그렇다면 서지혁의 부상 또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가능성만큼은 완벽하게 닫아두고 싶었다.
다소 비정상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박무현의 말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치과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신해량은 백호동에서 이미 팀원 두서 명을 잃었을 것이다. 남은 탈출정에 팀원들을 아득바득 태워 내보냈을 테니까.
신해량 개인의 믿음과 신뢰는 부가적인 문제였다. 싫든 좋든 박무현이 남기고 간 말들로 신해량은 팀원들의 목숨은 물론, 김가영까지 구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영리한 치과의사는 신해량이 제 말을 무시할 수 없도록 무거운 단서까지 남기고 가지 않았는가.
“저는, 해량 씨가 6억을 어디에다가 썼는지 알고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신해량이 결정을 내렸다.
“중앙동 엘리베이터를 탈 거야.”
어수선하게 떠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해량에게로 돌아갔다. 설명을 요구하는 노골적인 눈빛에 신해량은 구부정하던 자세를 바로 하며 말을 이었다.
“중앙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한도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대신 엘리베이터를 고장 내야 해. 어느 층에서도 문이 열리지 않게끔.”
“미쳤어요?”
“팀장아, 그게 무슨 소리니.”
신해량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팀원들의 얼굴을 쭉 살펴보고는 강수정을 향해 말했다.
“청룡동 탈출정 포트에는 라팀이 무장한 채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해 가는 편이 좋습니다.”
“아니…….”
이미 나팀이 중앙동에서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을 본 직후였다. 라팀이 총을 들고 숨어있다 한들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청룡동 근처는 가보지도 않은 신해량이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거였다.
강수정이 말문이 막힌 채 쳐다보자 신해량은 묵묵히 설명을 이어갔다.
“저도 지금 상황에서는 탈출정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중앙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신해량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오로지 박무현의 말만 믿고 자신의 판단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순간이었다. 기분이 썩 후련하거나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왜 고장 내는데요?”
백애영은 금괴가 든 가방과 소총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나팀과 라팀만 무장하고 있는 게 아니야. 해저기지는 현재 사이비 테러범들에게 점령됐어.”
“네에?”
여태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관심 하나 없는 무료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있던 김재희가 신해량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걸 팀장님이 어떻게 알아요?”
“설명은 나중에.”
신해량은 옆에 다가온 김재희를 한번 쳐다보고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박무현이 했던 말을 빌려 가며.
“중앙엘리베이터를 타면 2해저기지에서 반드시 멈출 거야. 우리는 3해저기지와 2해저기지는 물론, 1해저기지도 거치지 않고 대한도로 한 번에 올라간다.”
“아니, 무슨, 그게 말이 돼요?”
“테러범? 테러라고?”
“연구센터를 폭격한 게 그놈들 짓인가요?”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신해량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유금이를 보며 대답한 뒤 다시 팀원들에게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만 열리지 않는다면 대한도까지는 별일 없이 올라갈 수 있어.”
“이거 미친 짓인 거 같은데.”
서지혁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지금 바로 움직일 거라는 신해량의 지시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운 대로 총 대신 바벨과 원판 등으로 무장을 하고 출발 준비를 마친 서지혁이 주둥이를 댓 발 내밀며 투덜거렸다.
“아아, 모르겠다. 저는 팀장님 말만 믿고 갑니다. 나 죽으면 신 팀장 고소할 거야.”
“그러든가.”
오피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서지혁이 선두에 섰다. 신해량은 사람들이 오피온에서 전부 나갈 때까지 입구에 서서 주위를 경계했다.
“지금 한 얘기도 다 무현 씨한테 들었어요?”
백애영이 오피온을 막 빠져나오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신해량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
“일주일 전에 퇴사한 사람 말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거 아니에요?”
“믿을만한 정보였어.”
단호한 신해량의 대답에 백애영은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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