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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거


사람들은 박무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해변에서 마주친 엠마는 배낭을 돌려달란 박무현의 말에 너 누구냐는 눈빛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하자 엠마는 조금 놀란 듯 박무현을 쳐다보다 순순히 배낭을 넘겨주었다. 왜 나는 너를 처음 보는 거 같냐는 물음엔 박무현도 대답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해변으로 돌아온 서지혁과 강수정이 아는 체하며 인사하긴 했으나 해저기지에서 동행했던 박무현은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 덕분에 탈출정을 타고 나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던 서지혁은 끝까지 박무현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말도 마요. 타마키가 총 들고 탈출정을 점령하고 나팀 애들 다 죽이고 지도 죽을 생각인지 난리였어요. 근데 누구였더라. 타마키랑 사이 좋았던 사람이 있었나 봐요. 그 사람이 고르는 사람은 바로 탈출정 태워준다고 했는데 저를 처음으로 부르는 거예요. 덕분에 바로 나왔죠. 근데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우리 팀 사람은 아니었는데……. 누구지?”

나다, 이 자식아. 박무현은 횡설수설하는 서지혁의 말을 들으며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 지현이가 무사하니까 안 보이는 신 팀장은 어디서 죽어가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듯 농담처럼 떠들었다. 강수정에게 몇 대 등짝을 맞으면서도 마냥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해량이 바다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정상현을 데리고 나타났다. 강수정이 눈을 빛내며 기뻐했고 곧바로 치과의사를 찾는 부름이 들렸다.

박무현은 가슴 안쪽을 꽉 막는 답답함을 떨쳐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재희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박무현은 피를 철철 흘리는 정상현을 붙들고 처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무현의 뒤로 김재희가 후다닥 뛰어왔다. 꽤 살벌한 기세의 신해량이 서지혁과 강수정의 만류를 뿌리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뒤늦게 박무현을 발견한 신해량이 팔에 매달린 서지혁을 뿌리치고 걸어왔다.

“엔지니어 가팀 팀장 신해량입니다.”

저 인사를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치과 의사 박무현입니다.”

선선하게 대답하는 박무현의 목소리에 신해량이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박무현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말했다.

“손은 다치신 겁니까.”

“예.”

“재희와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친구입니다.”

등 뒤에서 ‘무현 씨. 그 친구 좀 살려주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신해량은 마치 김재희에겐 너 같은 친구가 없는데, 하는 눈빛으로 박무현을 쳐다봤다.

“재희와 잠시 따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신해량은 박무현을 심문하기보다 김재희를 데려가고자 했기에 무엇도 캐묻지 않았다.

박무현은 김재희를 잘 어르고 달래어 팀장 품에 보내주었다. 정말 자신을 처음 본 사람처럼 구는 신해량의 태도에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신해량과 함께 바다에서 나온 리코도 무사했다. 그 역시 박무현을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들을 붙잡고 애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비록 그들은 박무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박무현의 바람대로 다들 해저기지에서 탈출했으니까. 그거면 됐다.

모두가 무사히 탈출했다.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저 멀리서 김가영과 투마나코도 해변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김재희와 정성현을 향한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해저기지에서 탈출한 이들이 하나둘 대한도로 도착하고 있었다.


* * *


박무현은 해변에 버려진 사람처럼 덩그러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저기지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회차가 제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말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하며 언성이 커지기도 했다.

그들의 기억 속 유일한 접점으로 있어야 할 존재는 말끔히 지워진 상태였다. 박무현은 너희가 기억 못 하는 그 사람이 전부 나라고 외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모른 척했다.

“역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런 박무현 옆으로 김재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요. 그러면 저들도 무현 씨를 기억할지도 모르죠.”

“아뇨. 괜찮습니다.”

눈치 빠른 김재희가 박무현의 아쉬움을 읽어냈다. 하기야 그립다는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댔는데 그들은 정작 박무현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상함을 느낄 만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경험을 해보았던 김재희뿐이었다. 김재희도 루프가 끝나고 생존한 사람들이 루프를 돌던 사람을 잊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지만.

“다들 살아서 탈출했으니까 그거면 됩니다.”

박무현은 살아 돌아온 이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지금 죽으면 과거고 뭐고 그냥 죽는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재희 씨. 저 죽일 거예요?”

“친구를 죽일 순 없죠…….”

박무현은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김재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무한교에서도 저를 다 잊어주면 좋을 텐데요.”

“그럴 리가요. 게네는 아직도 무현 씨를 찾고 있을 거예요.”

박무현의 실낱같은 희망 사항이었다. 루프가 깨지면서 무한교에게 박무현의 존재도 지워지기를. 하지만 김재희가 멀쩡히 박무현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무한교도 여전히 박무현을 찾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막연했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미처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누군가 해변에 나타났다. 박무현은 그 거대한 풍채를 보고 상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남자는 어수선한 해변을 들쑤시고 다니며 박무현을 찾아 헤맸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해변 한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는 박무현을 곧이곧대로 잡아다가 바치진 않았다.

그러나 제때 몸을 숨기지 못한 박무현이 남자의 눈에 걸리고 말았다. 도망갈 새도 없이 머리채가 잡히고 목덜미가 낚였다.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박무현은 무한교 제단에 바쳐지지 않았다. 다친 사람도 없었다. 그저 덩치 큰 사내의 시체가 해변에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박무현은 종종 백애영의 연락을 받았다. 김재희와 마찬가지로 백애영은 박무현과 해저기지를 탈출하면서 있었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팀장이 그러는데 제가 탈출정 타고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무현 씨 저랑 같이 중앙 엘리베이터 타고 탈출했잖아요. 그쵸?

“그랬죠. 저는 거기서 손가락도 잘렸는걸요.”

-그러니까요! 근데 저 인간은 왜 자꾸 헛소리하지?

백애영과 신해량이 기억을 맞춰본 모양이었다.

-무현 씨가 했던 말, 진짜예요?

“예?”

-하루를 반복해서 산다고 그랬었잖아요. 혹시 이전에 제가 탈출정을 탄 적이 있었나요?

박무현은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해량 씨가 기억하는 회차에서는 애영 씨가 탈출정을 타고 나가셨습니다. 지혁 씨도 그때 같이 탈출했고요.”

-왜 저는 기억이 안 나죠?

“아마 탈출정이 고장 나서 해수면으로 가지 못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랑 다시 만난 거 같네요.”

-…….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백애영은 생각할 게 많은지 한숨만 연달아 내쉬다가 말했다.

-그때 무현 씨가 했던 말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전부 다 믿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무현 씨가 한 말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게 너무 많네요.

“애영 씨.”

이야기를 가만 듣던 박무현이 차분히 말했다.

“제가 해저기지에서 했던 말들은 그냥 잊어주세요. 못 들은 거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해저기지에 있는 동안 스트레스받아서 망상증이 도졌었나 봅니다.”

-저는 무현 씨가 한 말 전부 믿는다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긴 하다.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박무현은 진심으로 백애영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백애영과 김재희를 제외하면 생존자들 머릿속에 박무현이란 사람을 말끔히 지워진 상태였다. 백애영이 서지혁이나 신해량과 어설프게 기억을 짜 맞출 바에야 없던 일로 묻어 버리는 편이 깔끔하고 좋았다.

“믿어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정말 잊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애영 씨도 신경 쓰지 마시고…….”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무한교 그 자식들 아직도 무현 씨 찾아다니고 있는 거 알아요?

박무현이 놀라 헛숨을 삼키자 백애영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걱정하진 마세요. 제가 처리할 테니까.

뭘 어떻게 처리하려고. 박무현은 차마 입 밖으로 던지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애써 묻어놨던 걱정과 불안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삽시간에 불어났다. 무한교가 이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거 같진 않았다. 사실상 와해가 되었다곤 하지만 그들 중 살아남은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을까?

한동안 박무현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렸다. 길거리에서 무한교 신도를 만날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억지로 일상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덕에 지금은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집 앞은 편하게 나다닐 수 있게 됐다.

한데 백애영의 입으로 무한교가 아직 너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좀처럼 불안함이 가라앉질 않는다. 지금까지 찾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찾지 못할 거다. 무한교는 이제 전과 같은 재력과 화력이 없다. 그리고 박무현은 해저기지에 고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많았고 언제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울타리 안에 있었다.

내가 주위를 조금 더 경계하고 살피면 된다. 박무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엄마와 동생에게 더 자주 연락해서 무사한지 확인하면 될 거다. 혹여나 이상함을 느낀다면 당장 두 사람을 대피시키고 경찰에 신고해서…….

-……현 씨! 무현 씨!

“아. 예, 예.”

불안과 상념에 파묻혀가던 박무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불안정하게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머쓱하게 둘러댈 말을 지어냈다.

“죄송합니다, 애영 씨.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제가 괜한 소리를 했어요.

하지만 백애영을 속이지는 못했다.

-무현 씨야말로 제가 한 말 잊으세요. 마침 노는 인간들 있어서 제가 써먹기로 했으니까 무현 씨는 안전할 거예요.

박무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상대와 통화 중이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예, 그렇군요…….”

-그리고 저한테 해주신 얘기들 그냥 잊을 수가 없게 됐어요. 이미 서지혁이랑 팀장님한테 다 얘기해버렸거든요. 혹시 제가 그 인간들한테 말해서 무현 씨가 곤란해졌을까요?

“어……. 아뇨? 그렇진 않을 겁니다…….”

어쩌다 우연히 해저기지라는 접점으로 만난 인연이었으나 신해량과 서지혁에겐 박무현에 대한 기억조차 남지 않았다. 그들의 계약은 종료되었을 거고 박무현은 해저기지를 퇴사했다.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러니 백애영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든 박무현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행이네요. 팀장 목걸이 무현 씨가 갖고 있죠?

박무현은 그제야 주인에게 미처 돌려주지 못한 목걸이가 떠올랐다. 배낭에 넣어뒀던 파우치는 무사히 백애영에게 돌려줬으나 원석이 박살 나 깨져버린 목걸이는 선뜻 신해량에게 돌려주질 못했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신해량에게 산산조각 난 목걸이를 돌려줄 자신이 없어 나중으로 미뤘다.

그렇다. 무서웠다. 당시엔 몸도 마음도 힘들고 지쳐서 신해량에게 맞을 각오를 다질만한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백애영을 통해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부상을 치료하고 난 뒤 짐을 정리하던 중에 박무현은 라피스라줄리를 발견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메신저를 통해 연락할 생각도 못 했다.

산산조각 난 원석 파편을 잘 그러모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보관함에 목걸이째 넣어 두었다. 깨져버린 원석들이 흩어지지 않게 고이 담아놓은 뒤 아쉬움과 미련도 함께 닫아두었다.

“아. 예, 저한테 있습니다. 배낭에 넣어놨었는데 돌려드린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박무현은 이제 겨우 그들을 완전한 남으로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다. 목걸이가 주인에게 돌아갈 때가 됐다.

“애영 씨를 통해서 전달 드리면 될까요?”

-아뇨. 직접 전해주세요.

“예?”

-치료 잘 하시고! 저 일이 생겨서 나가…….

갑작스럽게 걸려온 통화는 전화가 왔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끊어졌다. 구태여 무슨 일이었는지 덧붙이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박무현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멀뚱히 쳐다봤다. 직접 전해주라니? 신해량을 마주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박무현은 그동안 많은 신해량을 봐왔지만 신해량은 박무현을 모른다. 남과 다름없는 인간이 그의 소중한 목걸이를 가져간 거로도 모자라 그 목걸이를 깨부숴 먹었다. 심지어 한참이 지나 부숴 먹은 목걸이를 돌려준다 하는데, 얼마나 괘씸할까.

‘얼굴은 피해서 때려달라고 해야겠다.’

박무현은 요동치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혔다.

기왕이면 백애영 편에 맡겨서 돌려주고 싶었건만. 인생이 참,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착잡한 기분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루프를 반복하는 동안 신해량에게 맞아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맞게 될 거 같다. 아프겠지. 분명 아플 거다. 한 대 맞고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박무현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 * *


절단된 손가락은 깨끗하게 아물었다. 박무현은 아직 의지를 달지 못하고 뚝 잘려나간 손가락을 어색하게 쓰다듬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어느 날 갑자기 집 앞으로 찾아와 네가 뭔데 내 목걸이를 가지고 있느냐며 따져 물을 줄 알았던 신해량은 굉장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박무현에게 연락을 해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땐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전화가 끊기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받아보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무뚝뚝한, 박무현이 잘 아는 목소리.

신해량은 정중하게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고 약속했던 때에 맞춰 박무현을 찾아왔다. 신해량의 방문은 목적이 분명했기에 박무현은 목걸이를 담아두었던 작은 함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두 사람의 접선지는 집 앞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유동인구가 많았으며 구석 자리에 마주 보고 앉은 두 남자에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신해량을 힐끔거리는 시선은 꾸준하게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잡아끄는 외모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박무현의 존재만 구석 자리에 맞게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손은 괜찮으십니까.”

“여기 해량 씨 목걸이입니다.”

말없이 음료를 마시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겹쳤다. 고개를 들자 신해량과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다.

원래 같았으면 먼저 얘기하라 권했겠지만, 박무현은 어서 그에게 목걸이를 쥐여주고 싶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어서 볼 장을 보고 신해량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 보면 아시겠지만 목걸이의 원석 부분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박무현은 최대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범죄를 자백하는 기분이었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라피스라줄리에 얽힌 이야기를 이미 알아버린 이상 박무현은 죄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어깨가 무거웠다. 목걸이를 부순 건 박무현이 아니었지만 그의 손에서 부서져 버렸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다.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 박무현은 시선을 내리깔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신해량은 전혀 화가 난 거 같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다 부서졌습니까.”

오히려 부서진 원인이 궁금하다는 말투였다. 박무현은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차라리 밟았거나 어디 부딪히거나 떨어뜨려서 깨진 거라면 뭐라고 설명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냥 손에 쥐고 있었는데 박살이 나 버렸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금이 가더니 깨졌습니다. 부서진 잔해를 최대한 모아 보관해뒀으니 한 번 확인해보세요.”

신해량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보관함으로 향했다. 그는 말없이 보관함을 가져갔다. 커다란 손이 별 힘들이지 않고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박무현은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신해량이 욕을 하거나 화를 내면 좀 나았을까. 무덤덤하다 못해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낯짝을 보니 속이 더욱 타들어 갔다.

그거 유품 비슷한 거잖아. 내가 그걸 부쉈다고. 심지어 신해량에게는 박무현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와 함께 고생이란 고생을 하며 탈출했던 과정이 사라진 것이다. 박무현에게 ‘신세’ 진 기억 따위도 없을 테고.

눈앞의 남자는 말 그대로 박무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 박무현은 그저 해저기지에 새로 온 치과의사. 그런데 해저기지가 테러 당해 출근 닷새 만에 실직한 일반인. 그 정도밖에 안 될 거다.

아, 이제 하나 더 추가되기는 했다. 그의 목걸이를 훔쳐다가 깨부숴 먹은 인간.

그래. 이건 한 대 맞아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최대 세 대까지 맞아도 할 말은 없다. 신해량에게 세 대를 처맞고도 살아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

신해량은 말없이 보관함의 뚜껑을 닫았다.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는 것을 본 박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금니를 깨문 턱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한 대 맞고 기절할 수도 있나? 카페에서 사람을 패긴 좀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자고 하려나?

초조하게 속을 태우던 박무현의 우려와 달리 그의 안면으로 날아드는 주먹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은 없었다.

박무현이 슬그머니 눈꺼풀을 들었다. 신해량은 여전히 맞은편 자리에 앉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박무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무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신해량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손을 올리기라도 할 거처럼 행동하시길래 저의를 파악 중이었습니다.”

“저 해량 씨 목걸이 박살 낸 건데…… 안 때리세요?”

박무현이 용기 내서 물었다. 안 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넙죽 절을 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유를 캐묻는 자신의 입을 순간 꿰매버리고 싶었지만 물은 엎질러졌다. 다행히 신해량은 괘씸죄를 더해 주먹을 내지르진 않았다.

“그런 이유로 사람을 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반응이었다.

“해량 씨 목걸이를 망가뜨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목걸이가 담긴 함을 쳐다보는 신해량의 시선에 박무현은 제 발이 저려 재차 사과했다.

“직접 만드신 거 같던데, 제가 똑같이 만들어드릴 재주는 없으니 최대한 비슷한 거로 사서 드리거나, 책정하신 금액으로 배상하겠습니다.”

박무현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라피스라줄리 목걸이가 얼마 정도 할까.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지? 머릿속이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정신없는 박무현의 머릿속을 한순간에 잠재운 건 차분하게 가라앉은 저음의 목소리였다.

“괜찮습니다. 언젠가 깨질 거라 예상했습니다.”

신해량은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

“…….”

정말 괜찮은 거 맞나. 박무현이 신해량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괜찮아 보이는 거 같긴 한데, 신해량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인지라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저는 재희가 목걸이를 가져간 줄 알았습니다.”

신해량이 엄지 끝으로 기억을 더듬듯 목걸이가 담긴 보관함을 매만지며 말했다.

“재희는 저와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박무현은 뭐라 대꾸할 말이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탈출정을 타고 나간 애영이는 무현 씨와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탈출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예.”

“제가 알고 있는 것과 팀원들의 기억이 상당 부분 달랐습니다.”

박무현은 목걸이를 돌려주기 위해 신해량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팀원들과 어긋나는 기억의 출처를 찾고자 박무현을 찾아온 게 틀림없다.

“선생님께서는 어디까지의 기억을 얼마나 갖고 계십니까.”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음. 저는 숙소에서 나와 애영 씨를 만났고 중앙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그 과정에서 손가락을 다쳤고요.”

박무현이 멋쩍게 웃으며 잘린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애영 씨 덕분에 무사히 대한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사이비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 해변까지 갔고, 이후로는 해량 씨도 아는 그대로입니다.”

“…….”

신해량은 입을 꾹 닫고 말없이 박무현을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건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라기보단 박무현의 거짓말을 진즉 눈치채고 왜 지금 거짓말을 하느냐는 시선에 가까웠다.

“제 목걸이가 왜 선생님께 있는 겁니까.”

박무현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삐질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러게요.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재희와 친구라고 하셨죠.”

“……예.”

“재희가 정말 3해저기지와 2해저기지를 잇는 계단을 올랐습니까.”

“예. 재희 씨 그날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혼자서 사천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거기 빛도 없어서 깜깜한데…….”

“해저기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그곳에 계단이 있다는 걸 대부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계단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박무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긋지긋했던 그 계단을 떠올리다가 무의식적으로 주절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란 듯 신해량에게 덜미를 잡혔다.

“무현 씨. 그 계단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입사한 지 닷새밖에 안 된 치과의사가 알 수 없는 정보이기는 했다. 박무현은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어떻게 알긴. 신해량 네가 알려줬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박무현은 오늘만큼은 과묵한 남자가 되어야 했다.

박무현은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불안에 떨던 제게 남들은 모를 근황을 알려주며 자연스럽게 비밀을 털어놓게끔 만들던 신해량이 떠올랐다. 그때와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드는지 모르겠다. 상대를 속이고 거짓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특히나 신해량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양심에 찔렸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박무현이 노골적으로 대답하기를 꺼리자 신해량은 의외로 선선히 물러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답을 듣기라도 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했다.

박무현은 안도하며 어서 신해량을 돌려보내려 했다.

“해량 씨,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는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목걸이는 정말 미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일정이 더 있으십니까.”

“예? 아뇨. 집으로 갈 건데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박무현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뒤따르는 신해량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저요? 저를? 해량 씨가요? 왜요?”

박무현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신해량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미간을 살짝 좁히며 박무현보다 더욱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천천히 설명했다.

“저는 무현 씨가 안전하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해량 씨가…….”

거기까지 말하던 박무현의 머릿속에 얼마 전 백애영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설마 애영 씨의 부탁입니까?”

“예.”

신해량이 순순히 대답했다. 따라붙는 말은 더 없었다. 박무현은 익숙하다는 듯 궁금한 걸 짚어 물었다.

“애영 씨가 왜 그런 부탁을 한 겁니까?”

“백애영은 무한교로부터 무현 씨를 보호하고자 합니다. 아직 무한교 잔당이 남아 있어, 그를 직접 처리하기 위해 저와 서지혁을 고용했습니다.”

박무현의 눈이 더욱 커졌다.

“고용이요?”

“아마 애영이가 큰돈을 썼을 겁니다.”

애영 씨!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박무현은 자리에도 없는 백애영을 부르짖었다.

그러니까 지금, 신해량이 박무현의 개인 경호를 맡으러 왔다는 소리 아닌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현기증이 일었다.

“무현 씨.”

반쯤 넋이 나간 박무현을 일깨우듯 신해량이 테이블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보수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따로 무현 씨를 만나고 싶었기에 애영이의 의뢰를 받은 겁니다.”

“목걸이…… 때문은 아니겠군요.”

모른 척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신해량이 박무현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예. 선생님께서는 저희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으며 제가 모르는 기억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

신해량은 진실을 원하고 있다.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진 박무현의 자리와 생존자들의 증언이 모두 어긋나는 사실에 대해.

박무현은 눈썹을 찌푸리고 시선을 이리저리 바삐 굴리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냥 이대로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신해량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박무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깨진 목걸이를 내보였을 때는 내비치지 않던 책망이 그 무뚝뚝한 시선에서 느껴졌다.

“궁금해하시는 거 이해합니다. 말이 안 되는 상황들이니까요. 하지만 애영씨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 모두 다 살아나오기도 했고…….”

박무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는 생존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특정 회차가 선택된 것도 아니고 모두가 살아서 무사히 해저기지를 나왔으니까. 이거로 충분하다.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의뢰를 받고 오셨다고 했으니 제 안전이 보장되는 대로 해량 씨도 돌아가서 본인의 삶을 사시면 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부탁한 의뢰는 아니니까 보수를 챙겨드릴 의무는 없겠죠?”

박무현이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사내는 감압병으로 고생했던 일이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멀쩡해 보였다. 잠수정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피를 흘리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는,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버리고 가라는 말을 했던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았다.

기왕이면 신해량이 건강하고 멀쩡한 상태일 때 루프를 끝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해수면으로 올라가는 신해량을 보면서 얼마나 큰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어차피 저는 해량 씨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알려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박무현은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니까 신해량이 건강을 챙기며 안전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심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지금 하시는 일은 위험하니까 그만두면 좋을 거 같긴 하네요.”

제발 위험한 일은 그만두고 안전하게 살아라. 목숨 귀한 줄 알란 말이야. 박무현이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무현 씨.”

박무현의 얘기를 묵묵히 듣던 신해량이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상대를 볼 때, 그런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잘근잘근 씹어 뱉는 말에 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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